'트립 투 이탈리아'를 따라가는 토스카나 셔틀투어
4월 24일 화요일
오전 6시 45분,
계산된 시간 보다 늘 일찍 서두르는 우리 두 사람은 15분 일찍 숙소를 나섰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아직은 한산한 새벽 거리를 걸었다.
로마 - 피렌체 이동을 유로자전거나라의 토스카나 셔틀 투어로 하기로 했었고,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찌감치 예약했었다.
이러한 도시간 이동 투어를 두 번 이용해 본 적이 있다. 호주에서 애들레이드 - 앨리스스프링스 구간과 페루에서 아레끼빠-뿌노 구간. 자동차를 렌트하기 전에는 갈 수 없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만족도가 아주 높았었기에 이번 투어도 미련없이 신청을 했다.
소도 때려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가이드는 앙증맞은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나타났다.
투어 멤버는 꼴랑 5명, 아싸라비아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안맞을 것 같은데, 그건 투어회사 사정이고!!!
"이오엄일 투어를 시작합니다." 엄가이드만 빼고 모두 이씨들이란다. ㅎㅎ
고속도로를 한 시간 정도 달려서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크로와상과 카페라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휴게소를 떠나면서 바로 토스카나 특유의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가 시속130km란다. 운전할 맛이 나겠다. 운전을 나에게 맡겨주면 최고의 드라이빙을 해 줄 수도 있는데....
국도로 접어 들면서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골 풍경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멀리 혹은 가까이에 있는 나즈막한 구릉에는 온통 노란꽃이(미모사란다) 가득했다.
"여기서는 멈추는 곳이 아니지만, 사진 한 번 찍고 갈께요." 길 가에 적당하게 주차 공간이 나타나자 엄가이드는 차를 세웠다.
ㅎㅎ 이게 소규모 투어의 장점이지.
남유럽 특유의 기와지붕집이 아니었다면 "너 제주도 다녀왔니?"라고 들었을지도 모르는 풍경이다.
엄가이드는 이리 저리 포즈를 지시하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사진빨이 얼마나 안 받는지 내가 잘 아는데, 내가 마치 모델이라도 되는 양 요구를 한다. 뒤로 돌아라, 모자를 이렇게 벗어봐라, 팔을 이렇게 해봐라....ㅋㅋ 한 커플과 젊은 친구는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어르신은 아예 차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난 꽃에서 사진 찍는 거 아주 싫어해." 그러시면서....
그림 같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저 푸른 아니 저 노란 초원을 얼마나 달렸을까? 꽤 달린 것 같은데 시간은 모르겠다.
사이프러스 나무 진입로가 엄청 아름다운 곳에서 잠시 서서 또 모델 놀이.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우가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 영화를 보지 않은 나는 멀뚱멀뚱거리고,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맞장구를 쳐준다. 집에 돌아가면 꼭 봐야지.
이젠 나이가 들어서 점핑 샷은 나에겐 무리다. 괜히 끼어들었다. 그래도 이런 사진을 건지기 힘드니까....
다시 길을 떠났다. 나와 젊은이는 창 밖 풍경을 연신 찍어댔다.
토스카나 지역엔 산 위에 도시들이 올라앉아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도 오래된 도시는 다 그런 것 같다. 이탈리아 초기 민족인 에투루리안인들은 전쟁엔 젬병이었단다. 그래서 방어 차원에서 산이나 언덕 정상에 성벽을 쌓고 도시를 만들었단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탈리아의 남한산성?? 엄가이드는 한참을 설명했는데 싹 다 잊어버리고 두 줄만 기억에 남았다.
11시 정도 되었나? 첫 번째 도시, 아니 마을 피엔자에 도착했다.
작은 골목도 예쁘고, 벽색도 인상적이다. 일단 마을 구경을 하자.
전쟁으로 폐허가 된 피엔자를 다시 만든 피오 2세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거의 다 잊어버렸다. 좀 적었어야 했는데....
예쁜 골목보다 피오2세의 피엔자 재건 이야기보다 더 멋진 것이 있다.
바로 전망이다. 발도르차의 평화로운 풍경이 이 투어의 가장 매력적인 것이다.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는 두 건장한 남자가 미니쿠퍼에 낑겨 타고(쿠건은 이탈리안 잡의 영향으로 미니쿠퍼를 빌렸지) 이 평원을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두 남자는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이 멋진 풍경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말이다.
녹색 평원을 검은 미니쿠퍼가 달리를 장면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샷으로 찍었는데, 그 장면이 내가 이 투어를 선택한 이유였다.
우리는 다시 마을로 들어갔고
이 지역의 전통생산품을 파는 가게로 갔다.
치즈도 맛보고, 살라미도 맛보고, 발사빅도 맛보고..... 여행 중에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나는 20년 숙성된 발사믹을 샀다. 가지고 다니기 무겁고 비싼데도 그 맛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어르신은 치즈를 두 덩어리나 사셨다. 이것도 나의 짐이다!!! 물론 어르신의 며느리에게 주는 선물이고 그럼 나도 옆에서 얻어 먹을 수 있으니, 그냥 가지고 다녀야겠지.
점심시간,
엄가이드가 추천해 준 몇몇의 레스토랑으로 흩어졌다. 뭐 결국 커플만 다른 레스토랑으로 갔지만 말이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직접 뽑아낸 생면을 올리브유를 충분히 넣어서 볶고 송로버섯을 잔뜩 뿌린 파스타(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다.)와 껍질이 바싹할 때까지 구운 통돼지를 큼직하게 썰어서 간장 비스꾸리한 소스를 이용하여 쪄낸 돼지고기찜과 믹스 샐러드, 화이트 와인이다.
이렇게 싹싹 배 터지게 먹고도 35유로?? 정도 냈다. 완전 합리적인 가격!!!!
충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골목 골목를 헤집고 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전망이 좋은 집에서 내어 놓은 벤치에 앉아서 쉬거나, 마을의 중심인 성당 앞 광장에서 바람이 시원한 그늘에 기대로 앉아서 한숨 자면서 피로를 풀었다.
4시, 다시 출발했다. 또다시 발도르차 평원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감동은 처음과 마친가지다.
멀리 탑들이 삐죽삐죽한 산지미냐뇨가 보인다. 냐뇨는 언덕, 즉 성 제이미의 언덕이란 뜻이란다(맞나? 들었어도 금방 까먹는다.)
엄가이드는 15분 정도 설명을 하고는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주었다. 피엔자보다 훨씬 큰 마을인데도 말이다.
이리 저리 골목 골목을 뛰어다녔다.
2관왕을 했다는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말이다. 누구랑 겨루었는지는 모른단다. ㅎㅎ
토스카나 멧돼지의 슬픈 전설을 아시나요?
청와대 밥상에 올랐다가 우리의 입방아에 올랐던 송로버섯, 그게 이 곳에서 많이 난단다. 땅 속에 묻혀있는 송로 버섯은 냄새를 잘 맡는 멧돼지를 이용해서 채취하는데, 멧돼지 역시 송로버섯을 좋아한단다.
멧돼지가 찾은 송로버섯을 먹어치우기 전에 얼른 가로채야한단다. 그래서 좀 더 쉽게 개를 이용해서 송로버섯을 채취하게 되었고, 멧돼지는 남아돌아가게 되었단다. 그렇다면 남아 돌아가는 그 멧돼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살라미로 만들어졌대나 어쨌대나.....
오후 7시 10분, 성 밖으로 나왔고 일행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피렌체를 향해 출발했다.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9시 30분??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했고, 그새 정이 들었다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서로의 남은 여행을 축복하며 헤어졌다.
덧붙임 : 트립 투 이탈리아를 다시 보았다. 아니었다. 그들의 길과 나의 길은 다른 길이었다. 뭐,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