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4일 금요일 - 5일 토요일
닷새 간의 휴가. 망설일 이유없이 포르투갈 여행을 선택했다. 스페인은 여기 저기 많이 다녀봤고, 더 유럽을 온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포르투갈의 아름다움과 인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바야돌리드에서 리스본까지 환승하지 않는 기차도 있고, 포르투에서 바야돌리드까지 환승하지 않는 버스도 있으니 이 보다 더 완벽한 장소가 어디 있으랴.
3일 밤 11시 10분에 출발한 기차는 쉬엄쉬엄 달려서 아침 7시 30분에 리스본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에 자가용으로 가면 5시간 30분 걸린다는 거리는 아홉 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시차 1시간이 있다.).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의 낭만적인 제목은 영화에나 있는 말이다. 하긴 그 영화에서 기차 분위기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힘들고 지루한 이동이었다.
옆 앞에서 덩그러니 서 있다가, 안절부절한 상태로 주변을 서성거렸다. 여행 안내책, 지도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고, 와이파이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좀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옆에 있던 가판대에서 지도 한 장을 샀다.
어두운 붉은 벽돌색 긴 코트를 펄럭이는 중국 여자 아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나? 중심가로 어떻게 가는지 아느냐? 지도는 어디서 났느냐?
살랑망카에서 기차를 탔던 그 여자 아이였다. 우리 나라 사람 느낌이 나서, 함께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중국이나 대만 쪽인가 보다. 지도는 비싸다고 고개를 흔들고, 중심가로 가는 길은 가판대의 할아버지가 알려주셨다.
난 버스를 타는 대신에 역 옆에 있는 높은 언덕 위의 멋진 건물로 갔다. 그 멋지고 웅장한 건물은 판테온이었고, 나중에 안 사실로 엄청 중요한 건물이었다. 전체적인 전망이 보일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대신 아름다운 골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적 아름다움 보다는 좀 지친 삶의 드러나 보이는 생활의 아름다움(순전히 관광객의 시점이다.)이다.
흰 벽과 주황색 기와 지붕과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조화로운 풍경을 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슬쩍 슬쩍 훔쳐보기도 하면서 미로와 같은 골목을 더 걸었다. 그러다 저 쪽 골목으로 지나가는 노면 전차를 보았다. 이게 웬 횡재냐. 난 가끔 꽤 좋은 운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모르긴 해도 사주팔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면 기찻길을 따라서 언덕을 더 올라갔다. 골목 구경도 좀 더 하고, 전차도 조금 더 탈 생각이었다. 얼마였더라? 3유로 정도 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비싼 요금을 내고 탄 전차를 골목을 돌고 돌아, 언덕을 넘어서 탈탈거리며 달렸다. 걸었느면 후회가 많았을 꽤 먼거리였다. 점점 중심가로 접어들었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에서 본 거리 모습을 지나쳐 갔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중심가로 가는 길을 알려줘서 다음 정류장에서 얼른 내렸다.
우선 광장이 있는 인포메이션으로 가서 지도를 받고, 로카 곶으로 가는 정보를 얻고, 리스본 카드 2일용을 샀다. 원하는 정보를 웬만큼 구하니 마음도 편안했다.
숙소를 찾아갔다. 상대적으로는 저렴하지만 내 수준에서는 비교적 비싼 숙소가 기대를 했는데, 낡고 협소한 것이 좀 실망했다. 하지만 친절한 주인아저씨의 안내로 마음이 쫌 풀렸다.
도착한 첫 날 오전은 이렇게 지나갔고, 오후엔 로카 곶을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일정은 토요일 하루 뿐이었다.
리스본 카드를 충분히 사용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고, 박물관, 미술관, 벨렘타워 등등을 다니면서 "puedo usar aqui este tarjeta?"를 열심히 물어가며 다녔다. 리스본의 교통비와 입장권은 낱개로 사용하면 무척 비싼 편이다. 하지만 리스본 카드 하나면 만사가 O.K 이다. 32유로를 주고 샀는데 50유로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역사적인 건물은 이미 스페인에서 지칠 만큼 봤기 때문에 감흥은 없었다.
리스본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운 골목을 가지고 있고 그 골목이 언덕으로 이어져 있어서 전망이 멋지다는 것이다. 골목을 구경하다가 그 내리막길을 힘들게 내려오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걸음을 보면 내가 참 사치스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리스본 여행의 시작은 바로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바다와 접해 있는 독특한 위치도 그렇고 협소한 지형의 리스본에서 이렇게 넓은 공간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특히 관광안내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점이다.
리스본의 미술은 매우 현대적이었다. 내가 가 본 그 미술관은 그랬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낮고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낡은 카세트였다. 그 힘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끌려 가다가 갑자기 손이 튀어나와 내 목을 조를 것 같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서 그 작품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물러나오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안스러움 끝에 나타나는 나의 이 부정적인 반전은 뭔가?'
포르투갈 역시 카톨릭국가 답게 거리엔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조명이 켜지는 밤이면 숙소 앞의 광장은 밤새도록 축제가 열렸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풍경이지만 그 거리를 따라서 돌아오는 길엔 나도 왠지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역시 포르투갈은 음식이다. 비싼 숙소비에 비하여 음식 값은 정말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해변 도시답게 해산물도 풍부하고 신선하다. 바야돌리드에서는 비싸서 사먹지 못했던 각종 생선으로 멋진 한 끼 식사를 했다.
특히 바야돌리드로 돌아오는 버스가 세워준 도로 옆의 레스토랑은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도로 변에 있는 버스에서 내리는 고정적인 손님을 상대하는 음식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들어가기가 싫었지만, 음식점을 선택할 상황도 아니었고, 점심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먹음직스런 음식이 서빙되고 있었고, 그 중에 제일 맛있어 보이는 것을 주문했더니 두 사람이 먹어도 남을 만큼의 양이 나왔다. 가격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맛있게 먹고(양이 너무 많아서 잘 튀기고 구어진 감자는 거의 못먹었다.), 음식 값을 지불하려고 보니 10유로란다. 이게 웬일. 이 정도면 25유로는 받아야 할 듯.
바야돌리드까지 10시간 가까운 이동이었지만 이 점심 식사 하나로 다시 타보고 싶은 버스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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