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적 기록74

가장 행복한 곳으로 작은 책이다. 짤막한 내 손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책이다. 3편의 단편과 작가 에세이 그리고 콜라보한 화가들의 그림이 들어있다. 소설 하나에 화가 한 사람. 그림들은 소설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무채색이거나 톤 다운된 색이다. 소설도 그림도 읽거나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다운된다. 절망적인데 절망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희망도 없다. 그냥 살아간다는 느낌. 표지의 그림과 같은 분위기다. '가장 행복한 곳으로'라고 말은 했지만 추운 겨울, 눈쌓인 낭떨어지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작고 가벼운 물리적 무게에 비해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 은근히 무거운 책이다. 작가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에 우리, 오합지졸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우리가 작가쌤에게 많은 것을 받아서 늘 고맙고 미안했는데 작.. 2023. 1. 21.
천장에 쥐 한 마리 욕실 천정에 쥐 한 마리가 있다. 돔천장이라 달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추워지는 밤에만 들어오는지 낮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창고에서 말리던 호박씨앗 한 쟁반이 모두 없어진 것도 그 녀석 소행임이 틀림없다. 몇 년 전에도 한 마리가 들어온 적이 있다. 그 놈은 욕실과 방 사이 벽으로 들어가 나무를 갉아댔다. 집의 뼈대인 구조를 갉아대니 신경이 곤두서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약을 놓았고, 불행한 살상의 현장을 耳擊(이격)하게 되었다. 목격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지. 이번에 들어온 녀석은 먹을거리(한 통의 호박씨)를 확보해서 그런지 다행히 목재 구조물을 갉아대지는 않는다. 밤에 우당탕거리는 것도 일정 시간에만 그렇기 때문에 녀석의 존재를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전기코드를 갉아댈지 다시 걱정.. 2022. 12. 13.
물들다 "이거 내년 봄에 다시 심으실건가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옹벽 아래에서 제복을 입은 관리인과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칸나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캐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했다. "뿌리 하나만 나눠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지요. 많이 가져가세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그들은 기쁘다는 듯이 몇 뿌리를 건네주었다. 여름내 유난히 키가 크고 싱싱하던 줄기에서 짙은 붉은색의 꽃을 피워냈던 칸나였다.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우리 집 마당에도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봄이 되고 땅이 풀리면 꽃 모종이나 알뿌리를 얻어다 심어놓는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은근히 물들어간다. 2022. 11. 28.
넉넉한 농부의 마음??? 남는 호박을 나눔하기 위해 우리 동네 도서관으로 가져갔다. 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들의 눈에 잘 띄게 아동열람실 입구에서 잘 보이는 로비에 놓았다. 이번에는 너무 날씬하지만 가지도 조금 놓았다. 많지 않은 양이지만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흐뭇했다. 내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어떤 경우는 나눔에 매우 인색해진다. 새벽마다 밭을 맨 것이나 아픈 허리, 흘린 땀, 모기의 공격 등이 생각나면 가져가라고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생각보다 많이 가져가거나 당연한 듯이 가져갈 때는 속상하다. 힘든 과정 때문에 결과를 포기한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나눔하기 싫다. 그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 형제라도 말이다. 자식이었어도 그랬을까? 주변에서 보면 집에 내려온 아들, 딸들에게 농사지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 2022. 9. 18.
[오늘 가장 큰 일] 돌아온 돋보기 이틀 전, 폭염과 높은 습도가 계속되는 날이었다. 밭일은 새벽에 집안 일은 오전에 서둘러 끝냈다. 우리 나라의 한여름을 견디는 것은 수도승의 고행보다도 힘든 일이다, 나처럼 조그만 더워도 땀을 비오듯 쏟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마당에 깔린 잔디마저도 늘어지기 시작하는 오후에는 여느 때처럼 에어컨을 공유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다. 노트북과 책과 필기도구 등을 바리바리 챙겨서. 코로나 19 상황 이후로 도서관에 사람들이 부쩍 줄었기 때문에 늘 내가 원하는, 제일 구석에 있는, 노트북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넓은 책상 위에 내 물건들을 정리하고 신발을 벗고 의자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편안하게 앉아서 잡다한 일들을 했다. 글쓰기 수업에 필요한 책을 읽고, 글을 정리하고, 독서회에서 필요한 발제문을.. 2022. 8. 23.
나는 입이 하나 귀가 둘이라는 사실을 또 망각했다. 오늘 그 순간 나는 좀비가 되었다. 귀가 하나이고 귓구멍이 꽉 막히고 입이 두 개 달린 좀비 늙음의 첫번째 징후는 주구장창 자기 얘기만 하는 것! 대화의 기본 원리를 잊는거다. 에어컨을 공유하러 온 도서관 창 너머로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노을을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2022. 8. 12.
미친 기온, 미친 햇볕 낮 기온 33도, 체감온도 39도 커튼으로 막아보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막을 수 없다. 개수대에서 물기를 빼고 있던 그릇을 뜨거운 햇볕에 말리면 좋겠다는 기발한 생각 그릇을 말리면서 나도 말려본다. 2022. 7. 3.
안개 속으로 안개가 무겁게 내려왔다. 예상은 했었지만 나는 운이 좋을거라는 과학적이지 않은 기대로 품고 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 속에서는 누구나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안개가 사라질 것이었다. 길이 옅게나마 보이자 누군가는 먼저 출발했다. 나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2022. 6. 20.
숨고 싶은 집 바로 뒤를 지나가는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집이 마을에서 돌아오다 보니 잘 보였다. 처음 지을 당시만 해도 꽤 외진 곳, 숨어있기 딱 좋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코 앞까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있다. 2022. 6. 13.
타인이 만드는 나 카톡에 공지를 한 지 닷새가 지나서 C가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왔다. 내가 공지를 한 날에도 충분히 익어있던 보리수였다. 우리는 완전히 익은, 곧 물러 떨어질 정도로 푹 익어버린 보리수 열매를 함께 땄다. "나는 퇴직을 할 때 다른 언어를 배우러 그 나라로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어." C가 부럽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일을 그만둔 후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일년 동안 머물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여행을 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리고 퇴직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며, 퇴직 후 1년 정도는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언어를 공부해보라고 권한단다. 내가 일년 동안의 여행을 준비한 것은 밀려나듯이 나온 학교가, 동료들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당당하게 보이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 2022. 6. 10.
2022년 꼭 하고 싶은 일 1. 올해의 첫 번째 목표는 여전히....DELE B1 자격증 따기....진짜 해보자. 2. 예쁜 정원 만들기 3. 주식 갖기 4. 장거리 비행 해보기 5. 최소비용으로 살기 2022. 1. 2.
나의 2021년을 평가해보자 올해 초에 일 년 계획을 꼼꼼하게 만들었지. 쫌 과하게.... 일년이 다 지났다. 평가를 해 볼까? 01. DELE B1합격하기 ----- 델레는 개뿔, 등록도 하지 않았다. 02. 스페인어 노래 5개 외워부르기 ----- 단양 스페인어 모임을 하면서 꽤 연습했고, 외워서 하지는 못해도 노래방에서 완전 신나게 불러는 봤다. 03. 멕시코에서 사 온 스페인어 동화 4권 읽기 ----- 펴보지도 않았지. 04. 스페인어권 친구 3명 사귀기 ----- 있던 관계도 끊어져 간다. 05. 소모임에서 음악감상 12번 강의하기 ----- 이건 코로나 상황이가 불가능했어. 06. 겨울 나그네 중에서 3곡 외워 부르기 ----- 합창단을 그만두면서 계획을 세웠던 것도 잊어버렸다. 07. 말러 교향곡 전곡 공부하며 듣기 .. 2021.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