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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기록

타인이 만드는 나

by 그랑헤라 2022. 6. 10.

카톡에 공지를 한 지 닷새가  지나서  C가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왔다. 내가 공지를 한 날에도 충분히 익어있던 보리수였다. 우리는 완전히 익은, 곧 물러 떨어질 정도로 푹 익어버린 보리수 열매를 함께 땄다. 

 

"나는 퇴직을 할 때 다른 언어를 배우러 그 나라로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어."  C가 부럽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일을 그만둔 후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일년 동안 머물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여행을 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리고 퇴직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며, 퇴직 후 1년 정도는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언어를 공부해보라고 권한단다. 

 

내가 일년 동안의 여행을 준비한 것은 밀려나듯이 나온 학교가,  동료들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당당하게 보이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나의  초라함을 감추기 시작했던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으로 보였나보다.  다행이 나는 운이 좋아서 여행 중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덕분에 특별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작정 저질렀던 그 일이 사실 나에게도 엄청난 경험으로 남은 것은 사실이고,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시작도 포장이 되었으나 시작할 당시의 씁쓸함은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그런데 가끔 C처럼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를 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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