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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기록

물들다

by 그랑헤라 2022. 11. 28.

"이거 내년 봄에 다시 심으실건가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옹벽 아래에서 제복을 입은 관리인과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칸나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캐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했다.

"뿌리 하나만 나눠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지요. 많이 가져가세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그들은 기쁘다는 듯이 몇 뿌리를 건네주었다. 여름내 유난히 키가 크고 싱싱하던 줄기에서 짙은 붉은색의 꽃을 피워냈던 칸나였다.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우리 집 마당에도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봄이 되고 땅이 풀리면 꽃 모종이나 알뿌리를 얻어다 심어놓는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은근히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