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 옮김
우리 나라 시도 읽기 어려운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발음도 어려운 폴란드 시인의 책이 독서회 선정도서다. 읽다 보니 물론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훨씬 많았지만, 꽤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인상적인 시에 대해 한줄평을 해 보는게 좋겠다.
십대 소녀
십대 소녀인 나?
그 애가 갑자기, 여기,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친한 벗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분명 낯설고, 먼 존재일 텐데.
............... 타임슬립 이야기가 많다. 나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등. 이 시도 타임슬립 시다. 칭찬 보다는 꾸중을 많이 들었고, 예쁜 옷이나 신발, 가방이 없어서 친구들과 비교해 괜히 주눅들고, 숨기만했던 나의 십대(그 나이에는 외모에 관심이 많은 법이다.). 그 아이를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겠지. 그러면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주겠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라고.' 그러면 좀 더 밝고 당당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암살자들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
암살을 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죽일 것인지,
어떡하든 많이 죽이기 위해, 몇 명이나 죽일 것인지.
하지만 그 밖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어 치우고,
기도를 하고, 발을 씻고, 새에게 먹이를 주고,
겨드랑이를 벅벅 긁으며 전화 통화를 한다.
....................... 이 암살자는 자신이 암살자라는 것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을 할 뿐이다, 아이히만 처럼, 그리고 수많은 정치인인처럼, 아무 생각없는 우리의 공무원처럼. 그래서 더 섬뜩하다.
베르메르
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단지에서 그릇으로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은 자격이 없다.
............................. 참으로 편안한 그림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 멈춰진 시간, 모든 것이 고요하다. 달리던 아이도 멈췄고, 소리도 없어졌다. 허공을 날던 까치는 허공에 떠 있을까, 아님 땅으로 떨어질까? 창 밖의 까치들을 보니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런 사람이 있다.
보다 능숙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말끔히 정돈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 해결책과 모범 답안을 알고 있는 사람들.
...........................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깔끔하고 명확함이 몹시도 부럽다. 그런데 왜 난 그런 사람들과는 친해지지 않는 것일까?
강요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다른 생명체를 먹는다.
사망한 양배추를 곁들인 돼지고기 사체.
모든 메뉴는 일종의 부고.
................................ '먹는다'는 소박한 행위를 혐오하게 된다. 이 시를 열번 읽으면 늘 말로만 하는 채식주의를 실천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안되니 아홉번만 읽어야겠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가까운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
존재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
그 가운데 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했을 뿐.
단지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를 힘들어 할 뿐이다.
그것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란 걸,
과정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이란 걸.
.................................. 삶도 죽음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그저 자연의 이치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 좀 더 생각을 하고 써야겠다.
이 외에서 신원확인, 기억의 초상, 엘라는 천국에, 어느 판독기의 고백 등.... 낯선 나라의 낯선 시인이 왠지 가깝게 느껴졌다.
시집을 읽기 전에 그리고 읽은 후에 해설을 읽었다. 시를 쓰는 사람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 역시 범상치 않다고 느낀다. 그리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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