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이달고 돈 키호테 데 라만차
열린책방에서 만들었다. 완역본이라서 1권이 784쪽이고, 2권이 해설과 작가 연보까지 해서 927쪽이다. 두 권을 동시에 받으면 숨이 턱 막힌다.
천천히 읽었다. 1권은 오래 걸렸는데, 2권은 상대적으로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스페인 지명이 익숙했기에 그나마 속도를 붙여서 읽을 수 있었다.
난 돈키호테는 풍차와의 대결만 있는 줄 알았었다. 그 옛날에는..... ㅎㅎ
돈키호테가 영 속도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1. 언어의 유희가 매우 중요한 책이다. 예를 들어서 가짜 백작부인 이름이 뜨리팔디[Trifaldi] 이다. 이 이름을 가지고 기분이 상한 산초가 뜨레스 팔다스[Tres faldas], 뜨레스 꼴라스[Tres colas]라고 말한다. 치마 세 개, 꼬리 세 개 뭐 이런 식이다.
또 산초가 통치한 곳이 바라따리아[Barata 싼 + ria 장소라는 의미의 접미사] 도 있다.
이 책엔 온통 이런 언어의 유희가 가득하다. 그러니 이렇게 쉬운 단어가 아니면 그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자꾸만 주석을 읽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속도가 늦어지지.
2. 이야기 속에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것들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레판토 해전도 그렇고, 이사벨 여왕과 펠리페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책 읽기가 중단된다.
3. 책 속의 장소를 구글맵으로 찾으면서 읽다 보면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웬만한 장소는 다 알고 있는 곳이지만, 진짜 작은 마을, 엘 토보소나 몬테시노스 동굴 같은 알려지지 않는 곳은 찾아봐야 하는 거다. 실제로 몬테시노스 동굴을 찾으면 거기에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 2권은 꽤 집중력이 생겼다.
1권에서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정신 나간 미치광이로 생각되었던 돈키호테와 대단히 현실적이고 그러면서도 우둔한 산초가 2권에서는 완전히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들에게 점점 애정이 생겼다. 그들을 놀려먹는 공작 부부나 다른 사람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꿈을 잃고 돌아와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돈키호테의 죽음과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산초의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돈키호테의 죽음의 원인이, 물론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사의 소견대로 "우울증과 무미건조한 삶이 그의 목숨을 끝내고 있다.'가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니 쓸쓸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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