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얇은 책이라서 깔보고 펼쳤다가 된통 당했다.
내 얇팍한 지적 수준으로는 읽을 책이 아닌 것이다. 난 이 책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와 인용구들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 철학자를 그 문장에 불러냈고, 그 말을 그 문장에서 인용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기는 불가능하다.
한 번 폈다가 접고, 몇 일 뒤에 다시 꾸역꾸역 읽기는 했으나.... 읽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한탸의 인생이 참 우울하다. 다음에, 독서회 시기에 맞춰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3월 16일 두번째 읽은 후에
이번에는 꽤 꼼꼼하게 읽었는데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태양만이 흑점을 지닐 권리가 있다 괴테
첫 장이 시작되기 전에 이 문장으로 먼저 시작한다. 난 여기에서부터 길을 잃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속시원한 대답이 없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이 의미를 알자고 파우스트를 지금 당장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여러 대답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태양의 흑점은 이 소설 속의 똥과 같다. 똥은 인간이기에 겪을 수 있는 어이없는 일, 인간이기에 지닐 수 밖에 없는 불안전함이다. 이것을 수용하는 사람 만차는 천사가 되고, 이것으로부터 도피하는 한탸는 원점으로 돌고, 절망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읽어나가니까 아퀴가 맞는 느낌이다.
폐지 압축공인 한탸는 습하고 어두운 지하작업장에서 온갖 종류의 폐지를 압축하며 술에 젖어 사는 고독한 사람이다. 옛날 방식대로 맨손으로천천히 일을 하고(소장에게 욕을 먹어가며), 그 속에서 매력적인 책을 골라 꾸러미를 만들고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어간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설자리를 잃어버리면서 자신의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보후밀 흐라발은 1948년부터 1990년까지 42년 동안 체코를 지배한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아래에서 글을 쓴, 삶이 매우 파란만장했던 작가란다. 프라하 카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1939년 나치의 의해 대학이 폐쇄된 뒤에는 공증인, 서기, 창고업자, 전보배달부, 전신 기사, 제강소 노동자, 철도원, 장난감 가게 점원, 보험사 직원, 약품상 대리인, 단역 연극배우, 폐지 꾸리는 인부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단다.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긴 했어도 법조인으로 일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망명보다는 체코를 떠나지 않고 구 삶 속에서 삶을 기록했다고 한다.
폐지 압축공인 고독한 한탸는 흐라발의 자화상이겠다.
이 소설에서는 당시의 절망적인 시대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나치의 지배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의 지식인들의 모습이다.
대학을 나온 운전기사 : 동유럽은 프라하의 문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고전적인 옛 역사가 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미생물연구소의 프란티크 슈투름 : 성삼위일체성당의 성기관리인 스란티크 슈투름은 한탸에서 비행 관련 서적들을 수집한다.
백정 조수인 시인 : 자신의 시를 읽어주기 위해서 애먼 사람을 협박함.
법학을 공부한 흐라발은 당연히 한탸.
그들의 절망이 어떠했을지는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다.
한탸의 작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차세계대전 막바지에서는 프로이센 왕실도서관의 책들을 압축시키고, 1950년대에는 나치문학과 서적들을 압축시킨다. 그렇게 시대가 바뀌면서 문화와 언론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보여준다.
6장, 부브니의 수압 압축기의 도입과 함께 새로운 산업사회로 들어선다. 한탸를 비롯한 많은 구시대의 지식인들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가는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다. 1960년대보다도 더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도 점점 적응이 힘들다.
한탸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는 의지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동조를 보인다. 부브니 공장의 노동자들이 휴가로 그리스와 불가리아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꽤 부러워하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부브니의 수압압축기의 작업 과정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챨리와 초콜릿 공장'의 공장 견학 장면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는 않는 구절들이 많았다.
1. 머리털이 빠져버린 내 머리는 알리바바의 동굴이다. 10쪽
2. 동유럽은 프라하의 문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고전적인 옛 역사가 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3. 6장에서 수압압축기 공장을 견학온 어린 학생들이 체험하며 찢은 책은 세 권짜리 소공자 8만 5천부 그러니까 25만부이다. 왜 소공자여야만 했을까?
4. 잔혹한 한국 형리처럼 냉정해져야 해. 98쪽 한국 형리? 원본에는 뭐라고 되어있지? 흐라발이 어떻게 한국 형리에 대해서 알지? 1970, 80년대의 우리 나라 경찰들에 대해서 뉴스에서 보았을까? 부끄럽네.
5. 마지막에 떠오른 이름 '일론카'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는 이름일텐데....뭐지? 책을 읽을수록 뻔뻔진다. 한국형리처럼에 대한 궁금증은 '문학동네'에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일론카라는 이름의 의미는 체코에 살고있는 유튜버에게 질문을 던져놓았다. 어느 거라도 대답을 들으면 좋겠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훨씬 더 많으나 여기서 그만.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책을 읽었는데도 아직도 개운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고, 좋은 책이라는 것은 인정이 된다. 이 이야기에는 많은 철학자, 화가들이 나오는데 음악가는 등장하지 않는다. 책을 압축하여 꾸러미를 만들고, 그 꾸러미를 유명화가의 복제화로 포장을 하는 작업이니 그려러니 하지만, 문득 흐라발은 음악에는 관심이 덜한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야기를 다 읽으니 반어적 언어를 사용한 제목이 이해가 된다. 책 속에 빠져서 혼자서 고독하게 살고 있으나, 그 내면은 늘 생각이 많고, 혼란스런 상태라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책을 한 번만 더 읽어야겠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보다는 서점에 주문을 넣어놓아야겠다.
3월 27일 세번째 읽은 후에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이 책은 역시 읽기 어렵다. 두번째 읽었을 때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두번째 읽을 때까지는 관심이 없었던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모르는 낱말들, 이름들, 지명들, 구절들을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읽으려 노력했다. 한탸의 삼촌이 구입한 기관차인 '오렌슈타인 & 코펠'까지도 찾아봤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문제들은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고, 더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나의 무식을 어찌하면 좋은가.
11쪽, 그리고 수학의 변분을 담은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변분? 양자역학에서나 사용하는 단어인가보다.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가 나는 나는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이건 또 어떤 분위기인거지?
24쪽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간 한탸가 우유를 마시는 장면, 거기에서 나오는 개구리, 입안에서 마구 버둥대는 개구리 다리를 잡아당겨 던진 후에 우유를 마져 마시는 장면도 상상불가이지만, 거기에 더욱 혼란스러운 한 문장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개구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인생의 반 정도를 요리를 주업으로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운영했던 식당 이름이 세 마리 개구리 깃발이었단다.
모노클래스의 검, 침대 주변에 가득 쌓아놓은 그래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엄청난 무게의 책들은 한탸에게는 모노클래서의 검, 공포다. 한탸는 그 공포를 잊기 위해 늘 맥주를 마시고, 그래서 망상을 하고 환영을 본다. 결국 그 망상과 환영이 그를 그의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73쪽 : 젊은 칸트가 보았던 '별이 총총한 하늘'아래 약동하는 자유.... 작가는 젊은 칸트처럼 자유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거기에 미친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가 있다.
이 책에는 2개의 반복되는 문장이 있다.
1.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이 문장으로 시작되고, 다른 장에서도 이 말을 심심찮게 등장한다.
2. 하늘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도 마찬가지다, 연 날리던 그 시절의 나는 인간적이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고는 반복되고 다음 문장은 조금씩 바뀐다.
또한 굵게 강조된 낱말들이 있다. 원서에서는 이탤릭체나 대문자로 강조한 부분이라고 번역자가 밝히고 있다. 러브스토리(2),딩(의성어 3), 몰로치!, 프로그래수스 아드 푸투룸,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아래 서명한 사람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임, 일론카... 또 있었나? 분명 의미가 있을텐데, 난 도무지 모르겠다.
132쪽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스럽다. 내가 완벽히 이해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책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휙 던져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사전과 인터넷을 찾아서 읽게한다.
나치 지배와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식인의 고통과 인간적이지 못한 기술사회로의 적응이 힘든 고지식한 사람들의 낙담이 안타깝다.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 감을 잡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독서평을 찾아봤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또 어떤 사람은 헤겔과 카프카 등을 알면 이 책을 받아들이는데 수월하다고 했다. 장난해? 헤겔이나 뭐 다른 철학자를 아는 데에 내 한평생이 다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만 이 책은 여기에서 접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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