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스페인(2015)

언덕 위의 요새, 쿠엥카

by 그랑헤라 2015. 12. 26.

2015년 12월 17일(목) - 18일(금)

 

쿠엔카, 2년 전에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여행책의 사진을 보고 꼭 가보고 싶었으나 경로가 맞지 않아서 포기 했던 곳이다. 마음에 남겨 놓은 곳은 어떻게든 가게 되는 것 같다. 

숙소가 가장 번화가에 있는 호스텔인데 아침에 거리를 내려다 보니 어젯밤 늦게 보았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내가 잘못 온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숙소에서 알려준 대로 천천히 걷다보니 금방 절벽 위에 세워진 건물들이 나타났고, 갈수록 그 멋진 위용을 더 보여주었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도시와 지금은 파라도로로 개조된 성이 마주보고 있는 풍경은 웬만한 상상력을 가지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어찌보면 론다와 비슷하지만 대지와 같은 색의 건물들은 훨씬 중후하게 보였다. 론다와 세고비아를 합쳐 놓은 모습이다. 



쿠엥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까사 콜가도(걸려있는 집)를 바라보며 협곡을 연결하는 좁고 긴 다리를 건너 구도심으로 들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교통이 편리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름답지만 한산한 거리를 여유있게 걸었다. 가능하면 좁은 골목을 따라서. 

걷다보니 도시의 가장 위쪽에 있는 까스티요로 가게 되었다. 1,2번 노선 버스의 종점이 까스티요인데, 커다란 붉은 버스가 좁고 낮은 아치형 문을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이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쿠엥카의 토속음식이라고 해서 주문한 묘한 음식을 먹은 후, 호기심이 발동하여 절벽 가까이 가보니 아래쪽에도 뭔가 무너진 유적이 있고 좁은 길도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길로 내려가 봐야하는 것이다. 일반 관광객은 잘 모르는 길을 혼자 찾아냈다는 뿌듯한. 



쿠엥카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도시로 구도심과 신도심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절벽 위 좁은 지형에 요새로 조성된 구도심은 매력적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없다. 





이 도시의 상징, 까사 콜가도. 지금은 미술관이다. 밖에서 보기엔 매우 작아보이는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위로 아래로 미로와 같은 공간이 끝없이 나타난다. 작품이 바뀌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본 전시는 현대미술이다. 이 건물과 느낌이 비슷한 작품만을 일부러 골라 전시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창을 통해 보이는 맞은 편 절벽과 파라도르도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곳이다. 




안토니오 페레즈 재단 현대 미술 센터. 지극히 평범한 입구, 단돈 2유로의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곳이라 정말이지 2유로만의 가치가 있을 줄 알았다. 입구와 처음 만나는 좁은 통로의 전시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아저씨가 'Muy fuerte!'를 외치며 나와서 '참 감성이 풍부한 분이시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되는 전시장은 끝이 없었고, 밖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던 파티오를 지나 또다른 건물로 건너갔다가 올라갔다가를 반복했다. 





전시 작품도 처음에는 평범하게 시작되었다가 점점 그로테스크해졌고, 어떤 방은 오싹한 기운이 느껴져서 들어가지 못했다. 


까스티요에서 보는 야경은 아름답다.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편이나 화려하지 않고 은근하여 좋다. 

사진으로는 이상하게도 화려하고 나왔다.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 낮 시간을 보내기가 애매하며 아예 2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쿠엥카를 선택한 나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