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8일 일요일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스페인의 아파트는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적어도 내가 사는 수사나의 아파트는 그렇다. 그래서 집에만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밖의 날씨가 어떤지 모른다.
주말에, 늦은 아침을 먹고 박물관에라도 가려고 나오면 깜짝 놀라면서, '이 좋은 날 집에만 있었다니...' 하는 날이 많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아침부터 스페인어 사전을 찾다가 늦은 아침을 먹으러 나왔는데 거실 쪽 창문이 환했다.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리오가 말해준 메디나 델 캄포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준비했다.
기차 시간을 찾아보니 꽤 자주 (1시간에 1대 정도?)있는 편이었고, 40분 정도면 가는 거리였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기차를 탔다. 기차는 아빌라로 가는 길로 달리다가 규모는 크지만 황량한 기차역에 나를 내려놓았다.
'도시 가운데 있는게 아니잖아? 어디로 가야 센트랄이야?' 막막. 구글지도에서 미리 본 머릿속 도시와 딴판이었다. 일단 기차역에서의 길은 하나이니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로 마중을 나오거나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고 떠났고, 나를 포함함 서너 사람만이 걸었다.
5분 쯤 걷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낡은 이정표에 시티센트랄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었으나, 허허발판으로 가는 길로 방향이 되어 있었다. '이건 자동차를 위한 이정표인가보다.' 생각하고 방황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 길이 시티센트랄로 가는 길이예요?"
"아니, 이 쪽으로 가야 해. 그리고 이 길은 까스티요 가는 길이야." 내가 걷던 길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시티센트랄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 준 방향엔 벽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뿔사, 거기에 허름한 계단이 있었고 그게 기찻길 아래로 난 지하도로 가는 통로였던 것이었다.
"와!!!!" 멀리서 성을 바라보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성곽은 견고했고, 성 주변엔 깊이 파여져 있어서 성문 이외엔 들어가는 방법이 없었다. 예전엔 주변에 물이 흘렀겠지? 그런데 이 높은 곳에 어떻게 물을 댔지?
성 안의 모습도 꽤 단단해 보였고 관리도 잘되어 있었다. 무료가 좋았으나, 그래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파티오 하나와 거기에 있는 박물관 하나와 그리고 작은 성당 뿐. 지하도 가보고 성곽 위도 가보고 싶었으나, 지하는 미리 신청한 듯한 단체에게만 개방이 되었고, 성곽은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볼 수 있는 곳은 샅샅이 다 돌아보았다. 볼수록 견고한, 대포가 와서 쏴도,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굳건히 그 땅에 서 있을 것 같은 단단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유있게 도시로 들어왔다. 도시로 들어오는 길은 그리 쾌적하지 않으나, 마요르광장에서 보는 모습은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도시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과 주민들이 모두 마요르 광장으로 몰려나온 것 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마요르 광장과 주변을 한 바퀴 돌고나니 배가 고팠고, 먹을 만한 조용한 식당을 찾으니 없었다. 마요르 광장의 두어개 식당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고, 바에 앉아서 타파만으로 배를 채우기엔 너무 배가 고팠고, 마요르 광장에서 두 블럭만 들어간 곳에는 지나는 사람 한 두 명만 있을 뿐 사람들도 식당도 바 조차도 없었다.
한참을 걸은 후에 동네 주민들만 있는 식당에 들어갔고, 콤비네이션 플라토 4번과 상그리아 한 잔을 주문해 먹고 (소스 없는 스테이크, 감자튀김, 계란후라이, 야채 약간), 바로 나왔다. 상그리아는 엄청 맛있었는데, 여기는 상그리아를 상그리아 라고 부르지 않나보다. 옆에 있는 부인이 설명을 해서 주문해 주었다.
'비노 틴토 콘 후르타.'
다시 마요르 광장으로 돌아왔으나, 난 이미 지루해졌고, 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기차역으로 갔고, 기차역 시간표에는 나와있지도 않는 주말 특별운행 기차를 타고 바야돌리드로 돌아왔다.
"Que haceis aqui?" 라고 바야돌리드 기차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타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빠르게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겠어? 집에 와서 생각하니 이렇게 물은 것 같았다.
간신히 난 메디나 델 캄포에 다녀왔고, 여기서 가까운 곳이고, 볼 것이 많지 않아서 그리고 내일 시험 공부 때문에 일찍 돌아왔다고 말했고, 타카는 엘 에스코레알에 다녀왔단다,
어제 출발한 거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단다.
'그래, 넌 의사소통이 자유로우니까, 막힘 없이 다니겠지, 난 길 찾고 물어보는데 적어도 3시간은 걸린단다.'
타가는 집이 멀지 않다고 걸어서 사라졌고, 난 버스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려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타카가 묵고 있는 집은 수사나의 집 보다 더 먼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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