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1일 토요일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아즈텍 문명에 대한 책(시공디스커버리: 마음에 들지않는 출판사지만 어쩔 수 없다)을 읽었다. 생각보다 관련 도서가 없어서 자세한 정보를 구할 수는 없었다.
공부도 했으니, 이젠 그 유명한 테오티우아칸을 가보자.
멕시코시티 북부 센트랄 버스터미널(Central de Autobus de Norte)에서 15분 마다 출발하는 버스가 있고,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멀지 않은 곳이다. 북부터미널은 엄청 크고 현대적이다. 이젠 무조건 길과 장소를 물어보며 다니니까 쉽게 원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어서 좋다.
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고, 옆에 앉았던, 이름이 뭐였더라...., 아뭏튼 아는 것이 많은 남자와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다보니 금방 테오티우아칸에 도착했다. 아! 라파엘.
라파엘은 달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그리고 케찰코아틀 신전을 차례로 보면 된다고 했는데, 그냥 걷다 가게 된 곳은 케찰꼬아뜰 신전이었다. 규모가 커 보이는 피라미드는 너무 멀리 있었거든. 일단 가까운 곳 부터.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을 때는 규모가 작다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그리 작지도 않았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내려올 것을 걱정하면서 올라갔는데, 앞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뒷쪽에 께찰꼬아뜰의 모습과 바다와 물고기 등 여러 가지 모습을 새긴 아름다운 제단이 있었다.
께찰꼬아뜰, 깃털 달린 뱀을 의미한다는 아스떼까족이 숭상하던 신으로 금발에 하얀 턱수염을 가진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신이 동쪽으로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는 전설을 아스떼까인들은 믿고 있었고, 스페인의 꼬르떼스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 께찰꼬아틀신의 귀한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우유부단한 목떼수마 2세는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넘겨버린 꼴이 되었다고 한다.
신전 앞에 있는 제단 비슷한 곳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좀 우스웠는데 그들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공식적인 봄이 시작되는 3월 21일이 되면 태양의 정기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로 몰린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자, 이제 저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로 가 보자.'라고 생각하고 걷는데, 목적지는 까마득한데 벌써 다리가 아팠다.
중간에 산재해 있는 유적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가끔 쉬면서 물도 마시고, 토마토도 먹고, 삶은 계란도 까 먹으면서 정말로 천천히 걸었다.
오른쪽에 우뚝 솟아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를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달의 피라미드 앞까지 왔다. 이 곳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좀 만나게 되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만나는 한국사람에게는 "여행 오셨어요?" 하고 물으면 대개는 틀린다. "여기 사세요?" 혹은 "출장 오셨어요?" 라고 물으면 대개는 출장 중인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우리 나라 기업들의 진출이 많은 곳이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보면 대개는 삼성 아니면 엘지이다. 내가 삼성을 꽤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께찰꼬아뜰 신전의 계단 경사는 가파른 것도 아니었다. 여기 거의 75도? 잠깐 고민을 했지만 여기도 포기하면 안될 것 같아서 올라갔다. 역시 나는 산악국가의 딸이었다. 보기와는 달리 금방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무척 아름답다. 태양의 피라미드에 올라갔단 온 젊은이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의 풍경이 더 아름답단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의 피라미드는 죽은 자의 거리 끝에 있어서 양쪽으로 작은 신전 비슷한 것들이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었다.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본다면 규모는 더 크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멋진 풍경은 볼 수 없겠다.
출장 온 젊은이들은 일찍 내려가고 나는 좀 더 앉아서 태양의 정기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곳, 달의 피라미드는 테오티우아칸의 실제적인 중심지로 인신공양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단다. 죽은 자의 거리를 질질 끌려오면서 제물이 되는 사람은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했을까? 나에게도 길게 느껴지는 그 길이 그 사람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길어었을까?
달의 광장 옆에 있는 계단으로 사람들이 많이 올라갔다. 당연히 나도 따라 갔더니, 께찰파팔로띠의 궁전이라는 곳이 나왔다.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가니 작은 파티오가 나왔고, 조각한 돌들을 맞추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 기둥들이 있었단. 라파엘이 말했던 파티오가 여기였나 보다.
되돌아 오면서 대양의 피라미드 앞에서 다시 한번 망설였으나...역시 포기하는 것이 건강에 좋겠다 판단했다.
1시. 뜨거운 태양이 돌로 만든 유적지를 데우고 있었고, 그 가운데로 걸어서 나오는 것은 태양의 제물이 되는 느낌이었다. 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그러나 가끔 나무가 있는 가장자리 길을 선택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도시락으로 싸온 주먹밥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걷기 시작했다. 아직 복원이 덜 된 유적지와 선인장 들판 사이를 한적하게 걷는 것도 좋았다. 내 뒤를 따라 한적한 길을 선택했던 두 젊은이는 더 한적한 길로 벌써 저만큼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다시 유적을 볼 수 있는 길로 들어왔고, 마지막 감상을 하며 나왔다. 다시 입구 쪽으로 왔을 때는 이미 완전히 지쳐 있었다. 한낮에 이 곳을 찾는 것은 안될 일이다. 한 시간 잠을 더 자기 보다는, 도시락을 싸기 보다는 가능하면 일찍 와서 둘러보고 정오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더 현명했겠다. 입구 쪽으로 와서 께찰꼬아틀 신전을 먼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여기를 마지막에 볼 생각을 했다면 분명히 포기했을 것이다. 앞에서 보이지 않던 그 멋진 조각들도 보지 못했을 것이고....
다녀와서 머리 속에 엉클어져 있던 단편적인 사실들이 정리가 되었다.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2세기에서 8세기까지 6세기 동안 있었던 문명으로 어디에서 왔는지,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는지가 아직도 의문인 문명이고, 아스떼까인들이 테오티우아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아스떼까인들은 이미 세워져 있던 도시인 테오티우아칸에서 눌러살지않고 테노치티틀란을 다시 만들었을까? 그건 아직도 의문이다.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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