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멕시코(2016)

오랜 전통이 살아있는 와하까(OAXACA)

by 그랑헤라 2016. 3. 31.

2016325일 금요일

부활절, 카톨릭에서는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답게 휴일이 길다. 바야돌리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2주간 휴가란다. , 2주면...어휴, 생각만 해도 지루하다. 스페인어 공부하는 것 자체가 휴가인 나에겐 주말 포함해서 사흘만 쉬는 사설어학원이 더 좋다.

 

오악사까. 구글지도에는 우리말로 요렇게 써있다. 하지만 이렇게 발음하면 아무도 못알아 듣는다. 와하까, 이렇게 발음해 줘야 대충 알아듣는 와하까에 부활절 휴일 동안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에 여유있게 나와서 메트로를 탔다.

? 이거 뭐지? 왜 레볼루시온역이야?’ 교통사고는 운전 경력 2-3년 때에 가장 많이 난다고 한다. 좀 자신이 생겼으니까. 나도 석 달이 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메트로를 탔는데, 잘못 탔다. 여유있게 나와서 다행이었다.


 

저렴한 버스표를 샀더니 차가 후졌다. 와하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엔 브레이크 라이닝이 나간 이상한 소리도 나서 불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별로 졸지도 않고 7시간 정도를 거뜬히 갔다. 와하까로 가는 풍경이 꽤 다양해서 지루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은 버스를 4대만 댈 수 있는 아주 작은 곳이었다. 이상했다. 꽤 큰 도시라고 했고,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버스정류장이 무척 크다고 봤었다. 어쨌거나, 밖으로 나오니 ‘zona centro’라고 화살표가 친절하게 그려진 안내판이 있었다. 가깝다고 말은 들었어도 걷기가 싫어서 카미욘(소형 버스) 기사에게 묻고 탔다. 그런데, 자꾸 한적한 곳으로 갔다. 이건 아니지 싶어서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되돌아 나가는 버스를 타라고 했다.

센트로에 도착하면 말해주세요.”하고 기사 뒷좌석에 앉았다.

? 여기 버스터미널로 다시 왔잖아?’ 기사에게 다시 물으니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아차했다. 여기서는 버스터미널을 ‘central autobuses’라고 하니까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가는 거였다. “소깔로 근처에 도착하면 알려주세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결국 묻고 물어서 도보로 소깔로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관광안내소에 가서 지도와 정보를 얻고, 숙소를 찾아갔다. 내가 짜증이 난 이유는 1. 날씨가 너무 덥다. 2. 배가 너무 고팠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작은 사과 2개와 토마토만 먹었다. 여기 버스는 휴게소에서 점심 먹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도착한 포사다(posada:호텔보다 규모가 작은 숙박형태, 여관 정도?)는 다행히도 꽤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외부로 통하는 창문이 없는 내 방은 더...

 

짐을 놓자마자 숙소에서 추천받은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메뉴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몰레. 몰레 맛은 촐룰라가 더 맛있었다



그리고는 서둘러서 프로세시온이라고 하는 부활절 행렬을 보러 갔다. 이미 행렬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행렬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다.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엄숙하게 진행되었고, 아이들이 떠들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 하는 신호를 주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바로 조용해졌다. 이 동네 아이들....참 순한 것 같다.


326일 토요일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운 것이 오늘도 꽤 덥겠다. 느즈막하게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가 예쁘긴 했다. 어디로 카메라를 들이대로 기본은 하는 사진이 나오는 동네다.



산토 도밍고 데 구스만 성당으로 갔다. 성당 주변의 공예품을 파는 천막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조차도 정스러웠다. 성당 안은 무척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정교하게 조각(?)된 천정이 눈이 들어왔다. 조각 아니고 도자기인가?




성당 앞 광장을 지나 작은 미술관으로 갔다. 전시된 판화 작품보다도 작은 파티오와 더 작은 파티오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파티오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멍 때기기를 했으면 좋을 곳이었다.



밖으로 나와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나무 그늘에 앉았다. 노란 벽을 배경으로 물건을 팔기 위해 앉아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안쓰러웠다. 뭐라도 사고 싶었으나 사탕 종류라서 딱히 살 만한 것도 없었다.



날씨가 뜨거우니 햇볕 속으로 걷기는 쉽지 않았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늘 쪽으로만 걷고 있었다. 걷기 싫을 때는 시티투어 버스가 최고다. 길을 걷다 우연하게 트란비아를 만났다. 여기는 관광객이 많아서 트란비아도 꽤 인기가 있었다. 주로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았는데, 경제적으로 꽤나 여유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지갑에서 500페소 짜리가 막 튀어 나왔다.







트란비아는 비용대비 허접했으나 도시는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건물도 아기자기하게 예쁜 구역이 많고, 나무도 크고 많고, 하카란다를 비롯한 각종 꽃이 만발해서 트란비아를 용서하기로 했다.




소깔로에서 한 블록 벗어난 곳에 있는 한적한 레스토랑엘 들어갔다. 좀 저렴해 보여서 들어갔으나, 메뉴판을 보니 절대 저렴한 곳이 아니었다. 그림 메뉴판을 보고 제일 맛있어 보이는 몰카헤테를 주문했다. 그림으로 보았을 때는 국물이 있는 뽀솔레 종류로 생각했는데, 그냥 고기와 수제소시지를 구워서 타코로 싸서 먹는 거였다. 어제 먹은 몰레도 맛있었는데, 이 동네는 음식이 먹음직스럽고 보기도 좋다. 또르띠야가 유난히 뽀얗다.



배도 부르고 더 이상 부러운 게 없었다. 해가 중천이라 그늘도 작았지만, 그 작은 그늘을 따라서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관광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배낭 멘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뒷모습이 종종 보이는 도시가 바로 와하까이다.



걷다가 다시 소깔로로 갔고, 까테드랄로 들어갔다. 예상외로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나 품위가 있었다. 까떼드랄 중앙에서는 한 플로리스트가 백합과 흰장미를 이용해서 꽃장식을 하고 있었다. 멕시코는 거리에 시장에 꽃집에 많은데, 선물이나 집을 꾸미기 위한 것 보다는 성당이나 거리의 성모상을 꾸미기 위한 것이 많다고 한다.



와하까의 거리에도 인상적인 벽화가 많았다. 곳곳에 작은 갤러리도 많고, 전시작품들은 매우 강열하고 민중 미술 느낌이 많이 났다. 심장 그림이 많은 것은 아스텍의 인신공양을 상징하는 것이겠지? 좀 섬뜩하기도 했다.



밤의 소깔로는 더욱 활기차게 변했다. 야광과 빛을 이용한 풍선, 비행물체 등등이 어지럽게 날아오르고 있고, 곳곳에서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미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팀이 내 관심을 끌었고, 바로 코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지폐(라고는 하나 소소한)를 넣어주었다.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뒤로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327일 일요일

아침 일찍 서두르려 했으나, 해가 일찍 떴다. 햇살은 눈부시지만 아직은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송신탑과 웬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하나 있는 곳이 있었다. 숙소에서 물어봤더니 공연장이라고 했다. 공연장이라니 가봐야 하는 것이었다.



아름드리 나무가 늘어선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건너기 위한 터널이 있고, 거기에도 역시 인상적인 벽화가 있었다. 위로 올라가니 와하까의 전망이 한 눈에 보였다. 꽤 큰 도시였으나 높은 건물이 없으니 한적해 보이는 도시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내가 내린 그 작은 곳이 아니었다. 1등석 버스를 타고 오면 내린다는 곳이 바로 저기인가 싶었다. 공연장은 원형경기장의 현대판처럼 보였는데, 소리가 어떨지는 의문이었다. 언덕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베니또 후아레스의 동상이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후아레스의 고향이라고 하더니, 후아레스와 관련된 건물이나 기념물들이 많았다.




금요일 밤의 부활절 행렬은 무척 엄숙했으나, 어제 밤부터 간간이 쏘아올리기 시작한 축포가 일요일 아침에도 계속 되었다. 조용하다가 깜짝 놀라기를 반복했는데....바로 저 연기가 그 축포다. 



10시에 체크아웃하고 240분 버스를 타러 가기까지 4시간. 시간을 잘 사용해야 했다. 어제 보고 남겨두었던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숙소 바로 옆의 예뻐 보이는 거리로 돌아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거리가 너무 예쁜 것이었다. 어제 진즉에 돌아봤어야 하는 곳인데....



와하까 문명박물관. 일단 규모가 꽤 커서 제대로 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박물관의 전시물 보다도 엄숙한 수도원의 느낌이 팍팍 나는 건물과 건물의 창을 통해 보이는 자연 경관이 더욱 아름다웠다.

, 그런데 문이 없는 뚫려있는 공간도 창이라고 하나? 이 건물은 외부로 통하는 창에 문이 없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을 남겨놓고 박물관을 나왔지만, 밥을 먹지 않고 2등석 버스를 타는 허름한 버스터미널로 갔다. 너무 더운데, 이 곳에는 에어컨이 있는 건물이 없다. 아마도 중심가의 폼나는 음식점에도 에어컨이 없을 것이다.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은 바로 들어가서 맥주 하나를 주문해 놓고 더위를 식혔고,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장거리 버스를 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풍경을 보기 위해 선택한 주간 버스. 역시 아름다운 경치였다. 그런데...두 번의 작은 교통사고를 지나치고,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자동차로 인해 교통 체증이 심했다. 7시간 걸리는 길인데 중간에 제대로 된 휴게소가 하나 없었다. 4시간 정도 달린 후에 화장실 하나, 편의점 하나 있는 허름한 곳에서 잠시 쉬었고, 승객들은 버스 안으로 들어온 타코아줌마에게 타코를 사 먹으면서 저녁을 해결했다. 10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버스가 자정 즈음에 도착했다. 이미 메트로는 끝나는 시간. 택시는 불안하고...



다행히 메트로버스는 아직도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 집 옆을 지나가는 공항메트로버스가 있었다. 30페소를 내는 좀 비싼 메트로버스지만 택시비 보다는 저렴하고 안전하기로는 최고인 교통수단이다. 다행이었다.



짐을 정리했다. 좀 비쌌지만 지나칠 수 없어서 산 전통수예 셔츠와 성당 앞에서 인디헤나가 들고 다니며 팔던 완전 싼 셔츠와 꼭 사고 싶었던, 그래서 카드로 확 긁어버린 전통공예품 알레브리헤를 보니 쫌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