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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멕시코(2016)

틀락스칼라(Tlaxcala)

by 그랑헤라 2016. 5. 3.

2016년 5월 1일 일요일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Tepeyac 라디오방송국 건물 옥상에는 커다란 영상 광고 모니터가 있다. 아침마다 보던 광고 중에 틀락스칼라 관광을 위한 광고도 그 중에 하나가 있다. 그리 매혹적인 곳은 아닌 것 같았으나 매일 보다보니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아침 7시 30분. 일찍 서둘렀더니 제법 이른 시간에 출발을 하게 되었다. 동쪽으로 가는 여행이니 버스터미널 타포로 갔다. 물론 인터넷으로 알아본 거다. 푸에블라와 와하까를 가느라 이용했던 타포는 이제 익숙한 곳이 되었다. 



136페소. 저렴한 만큼 가깝고, 서비스도 없는 일반적인 버스이다. 창가 자리인 내 자리에 젊은 아저씨가 앉아 있어서 난 그 옆자리에 그냥 앉았다. 밖의 경치를 보면 좋겠지만, 계속 다닌 길이라 그다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쪽 저쪽 창 밖으로 눈길을 주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그 아저씨는 커튼을 닫아버렸다. 멕시코시티 변두리의 주택가는 풍경이 참 열악하다. 외국인이 그런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고 사진을 찍는다면 나도 기분이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깜빡 깜빡 잠이 들었고, 어느 새 작은 도시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가 틀락까라예요?"

"예, 틀락스칼라예요." 옆에 앉은 젊은 아저씨는 잘못된 내 발음을 고쳐주며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버스에서 내려서 터미널 안에서 서성이는 나에게 다시 와서 물었다. 

"뭐 도와드릴까요?"

"아니예요. 몇 시 버스로 돌아갈까 생각 중이예요." 하마터면 냉정하게 잘생긴 모습에 홀딱 넘어가서 그 젊은 아저씨를 따라서 센트럴까지 갈 뻔 했다. 


센트럴로 가는 낡은 까미욘 안에는 세 모녀가 앉아 있었고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나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나를 외국인으로 신기하게 봐주는 경험은 집 떠나서 처음이었다. 






중심가인 헌법광장(한글로 쓰니 영 이상하다 :1813년 카디즈 헌법 선포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붙인 것이라는 것 같다.)에 도착하니 노동절을 맞이하여 시위가 한창이었다. 발언자는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가끔 구호도 외치고는 했다. 경찰관 대여섯 명도 사진을 찍고 구경도 하면서 옆에 서 있었다. 물론 알아들을 수는 없었는데, 교육 문제, 여성의 지위 향상...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소란한 시위 현장 반대편의 까페로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는 트란비아 운행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유난히 날씨가 쾌청했다. 멕시코시티보다 고도가 조금 높고, 공기 오염이 적어서 그렇다고 카페의 서빙하는 젊은 친구가 말해주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트란비아가 출발하는 곳으로 갔더니 벌써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여기의 트란비야는 유리창이 막혀있어서 좀 답답해 보였다. 다행히 개방형으로 된 뒷쪽의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트란비아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무척이나 융통성 있는 멕시코의 시간 관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트란비아의 가이드는 광장 주변을 돌면서 엄청난 설명을 쏟아부었는데 난 잘 모르겠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이나 찍을 수 밖에... 

틀락스칼라의 건물들, 특히 유적들은 낡은 그대로 보수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 경제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촐룰라는 모든 것이 산뜻해 보였는데, 이 곳은 모든 것이 후줄근해 보였다. 

가는 길에 시위행렬이 있어서 트랜비아는 루트를 달리해서 바실리카로 올라갔다. 보통의 시티투어 버스나 트란비아는 건물의 주변을 돌며 설명하는 것이 전부인데, 여기에서는 내려서 바실리카로 들어가는 코스였다. 신기하네.



매일 아침 광고 화면에서 보면 건물이 바로 여기였다. 미사가 한장인 시간이라서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설명을 했다. 여기 미사는 제법 규모가 크고 전통적인가 보다. 바실리카의 정문에서는 성모상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사를 더 보고 싶었으나, 우리는 옆에 있는 작은 박물관으로 옮겼다.



함께 다니며 설명을 들으니 마치 단체관광객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성화를 보면서 세세하게 설명하고 또 그것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 마음 속 깊이 들어있는 신앙심을 느끼게 했다.

박물관은 미사를 드리는 성당의 앞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말씀을 하시는 신부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고, 성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행운을 갖을 수 있었다.



다시 트란비아를 탔고 언덕 위에서 내려오면서 출발한 광장으로 돌아와서는 시티투어가 끝이 났다. 

"엥? 이게 뭐야?" 몇 개 설명도 하지 않았고, 또한 다시 가 보고 싶은 곳도 없었다.  일행들은 트란비아 회사에서 일하는 언니를 따라 우르르 어디론가 몰려갔다. 나도 따라가면서 들어보니 몰레 레스토랑을 추천 받고 모두들 그리로 가는 중이었다. 



굳이 같이 밥 먹을 생각이 없어서, 난 식당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잠시 방황을 하며 뭘 더 할지 생각을 했다. 더 할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베니또 후아레스 손 끝이 가라키는 팔라시오 레히슬라티보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반대편의 성당은 처음에 들어가 보고 실망을 했고.... 팔라시오 데 고비에르노로 갔다. 시청 건물이지만 한 쪽에는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오전에 들었었다. 

모퉁이의 문이 열린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거기는 바로 관광안내소였다. 입구에 있던 경비아저씨가 옆으로 가면 무랄레스를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시청으로 사용하는 건물의 한 쪽은 온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보지 못하던 화풍이었는데, 소치띠오찐(?) 이라고 했다.  멕시코와 틀락스칼라의 역사를 그림으로 그렸다.



1920년대의 멕시코 혁명이 끝나고 멕시코의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오브레곤 정부의 호세 바스꼰셀로스는 젊은 미술가들에게 공공건물의 벽면에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벽화를 그리도록 한 것에서 시작된 벽화미술은 멕시코를 대표하는 문화운동의 하나 이다.



점점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은 벽화에 대해 보수적인 정권은 그 지원을 끊었고 그렇게 벽화운동은 전성기를 지났지만 아직도 멕시코의 곳곳에서는 감탄사를 연발할만한 규모와 내용의 벽화를 볼 수 있다. 



아스떼까 제국에 끝까지 저항했던 틀락스깔라족이 꼬르떼스의 스페인군이 자신들의 영토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저항했으나 결국 지도자들이 화친 조약을 맺었고, 결국 꼬르떼스가 자신들의 원수인 아스떼까를 정복하는 것을 보고 지원을 하였던 그 역사의 모습이 벽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헌법 광장의 가운데에서는 오늘 시위와 관련하여 모금을 하고 있었다. 난 그 사람들이 운영하는 또르띠아를 먹기로 하고 줄을 섰는데, 음식을 장만하는 손놀림이 어찌나 어설픈지 내가 도와주고 싶을 정도였다. 기름을 끓이는 숯불을 피우는 남자의 손길도 어설프고.....

결국 맛까지도 별로인 또르띠야를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점심으로 때웠다.



지도를 보며 뭘할까 고민하다가 트랜비아 지도에는 있으나, 트랜비아는 지나가지 않은, 지도상에서는 유적지가 잔뜩 모여있는 것 처럼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거리에서 매듭끝으로 만든 팔찌를 골라 사가면서....

 


헌법광장 한 쪽 끝과 연결된 또 다른 광장, 그 광장과 연결되어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이 곳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자 도시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고, 그 쪽으로 가까이 가니 바로 아래에 투우경기장이 있었다. 와우, 대박!!

시간은 310. 오전에 광고판에서 오늘 투우경기가 있고 시간은 4시라고 했었다. 내 취향은 아니고, 이런 걸 돈까지 주고 보는 것은 웬지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잠깐 보고 싶었다.




옆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멕시코에서는 보기 드문(아직까지의 내 경험으로는) 무데하르 양식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건물이었다. 왠지 마음이 편하다.



그 옆에 붙어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아스떼까의 유물들이 주로 전시된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고, 그 맞은 편에 있는, 이 역시 광고판에 자주 봤던 까삐야 아비에르타(열린 예배당?) 으로 내려갔다. 몇 계단만 내려가는 것이지만 앞 쪽에서 바라보는 예배당의 모습은 오래된 그리스 유적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유적지 안에서 과하지 않게 애정행각을 하는 두 쌍의 젊은이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멕시코시티 광장이나 공원이나 할 것 없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연인들은 애정행각 모습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던 나인데, 배경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4시가 한참 지나서 악단의 트럼펫 소리와 함께 투우경기는 시작되었다. 예상 밖으로 관람객이 많았다. 관람객들은 박수를 쳐주고, 음악에 맞춰 박자를 맞춰주고, 환호를 보내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나온 어린 송아지와 어려보이는 투우사의 투우만 보다가 영 내 취향이 아니라서 자리를 떠났다.



하카란다 가로수길. 처음 하카란다를 보았을 때, 보라색꽃이 가득 피어있는 가로수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거기가 바로 여기였다. 이미 떨어진 꽃송이가 더 많은 나무였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좀 일찍 왔어야 했는데...




지도상으로 먼 곳도 아니고, 도중에 가보고 싶은 곳도 있으니 버스터미널까지 걷기로 했다. 중간 중간에 남의 집을 들여다 보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천천히 걸었다.



영웅들의 계단. 유난히 언덕이 많은 도시, 그 언덕을 오르는 계단도 많은 도시. 그 중에서도 제법 신경을 써서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역사 인물들의 흉상이 중간 중간에 있어서 영웅들의 계단이다.



이 곳에서는 틀락스칼라의 전망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유난히 많은 하카란다 가로수길이 인상적이다. 도시는 그리 크지않고, 산뜻하지 않지만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영웅들의 계단 위에서 버스터미널이 멀지 않았다. 길을 물어 보았던 콜롬비아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금방 터미널에 도착했고, 5시 50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 전에 여유롭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