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5일 수요일 날씨 - 산 속은 시원하나 바닷가는 따끈함.
아이델의 아침은 게으르다. 난 6시에 눈을 떴는데 계곡은 온통 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는 일찍부터 집안 정리를 하던 계곡 오두막의 할머니도 오늘은 인기척인 없었다. 터키는 동서로 긴 땅덩어리를 가졌으면서도 하나의 시간대를 적용하기 때문에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 아이델의 6시는 밝다.
9시. 파자르로 나가는 돌무쉬를 탔다. 가득 찼던 승객들은 중간에 다 내리고 파자르까지 가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오토가르까지 가지고 하고 싶었으나, 낯선 기사라서 말하지 못하고 결국 돌무쉬 정류장에서 내렸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3분 정도를 걸어서 오토가르로 갔다.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낯익은 돌무쉬 기사가 오토가르로 손님을 태우고 들어왔다.
그렇구나. 나도 오토가르까지 가자고 말 한마디를 했어야 했는데.....'
파자르의 오토가르에서는 모두들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말이라고는 지명 밖에 모르는 동양여자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신기했을 것이다. 모두들 내가 '오프'라는 곳까지 가는 걸 알고 있었다. 버스가 들어와서 일어서서 기웃거랄 때마다 모두들 손짓을 했다.
"앉아, 앉아. 오프 가는 버스 아니야."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렸을 것이다. 트라브존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고 모두들 나에게 손짓을 했다.
"차 왔어. 저거 타."라고 말하듯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승차티켓을 끊어주었는데 나에게는 그냥 올라가라고 했다.
'이건 뭐야? 공짜는 아닐테고.....뭔가 꿍꿍이가 있어." 난 정식적인 승객이 아닌 듯 했다. 오프까지 10리라를 내라고 했다. 어쨌거나 오프까지만 가면 되는 거니까.....그리고 그 정도 거리에 10리라면 뭐.....
버스는 흑해를 따라서 난 대로 중간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그것도 가드레일로 막힌 곳에서...그러더니 내 가방을 번쩍 들어서 가드레일 넘어로 넘겨주고 지하도로 내려가라고 알려주었다. 그 지하도는 오프의 오토가르와 연결된 것이었다. 결국 최단거리로 가라고 길 중간에 내려준 것이었다. 이건 고마워해야 되는 거 맞지?
오토가르로 가서 다시 두리번거리면서 우준굘행 미니버스을 찾았다. 한 돌무쉬 기사가 미니버스 정류장을 설명하는데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이거 타." 돌무쉬를 전세내고 달렸다. 골목을 돌아 돌아 1분이나 달렸을까? 혼자 찾아왔으면 고생을 했겠지만 1분 달리고 5리라를 내라고 했다. 치.
'이제 우준굘로 들어가는 미니버스만 타면 되는거다.'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가게로 들어가서 복숭아 2개를 사서 점심으로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옆에 있던 젊은 친구가 내준 사과상자 의자를 깔로 앉아서.....
그 곳에서 자기 마을로 들어가는 돌무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내가 우준굘에 가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돌무쉬가 올 때마다 아니라고 말을 했다. 앞 부분에 '우준굘'이라고 씌여진 버스가 들어왔다. 옆에 있던 젊은 친구도 그렇다는 눈짓을 해서 올라탔다. 사람이 무척 많았지만 난 자리를 양보 받아서 앉았다. 버스비를 내는데.....기사가 말했다.
"이거 우준굘에 안가. ****에 가서 바꿔 타면 돼." 뭐,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훤한 대낮이니까.
차이카라라는 마을에서 내려주었다. 그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준굘행 버스회사로 갔더니 여유시간에 꽤 있었다. 마을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면 정도의 크기였다.
사람들이 손짓을 해서 가보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슈퍼아저씨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나를 앉히더니 찍어주기도 했다. 마을에 조금만 더 예뻤으면 그냥 여기에 묵었을지도 모른다.
우준굘까지는 30분 정도 더 산 속으로 들어갔다.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는 길을 멋졌지만 아이델에서 온 나에게는 이미 평범한 풍경으로 생각되었다. 참 간사하기도 하지. 호텔 엔사르에 도착했다. 긴 여정이었다. 아침 9시에 아이델을 출발해서 우준굘에 도착하니 호후 3시. 6시간이나 걸린 이동이었다.
"야일라 투어는 없어. 거기에 가려면 택시로 가야해. 100라리도 넘어." 로비에서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야일라(산 위의 방목지)로 가는 투어가 있다는 것 때문에 엔사르를 선택했는데 난감했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 산책을 하면서 방법을 찾아보기 했다.
우준굘의 상징인 오수 건너편의 하얀 모스크는 단연 돋보이는 풍경이었다. 그 한적한 풍경 하나 때문에 우준굘에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했고, 레스토랑에서 완전 늦은 점심으로 송어구이를 먹었다.
그 사이에 구름은 산 허리를 감싸며 몰려왔고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흑해 일대는 휴가철이 끝났다는 웨이터의 말 처럼 우준굘도 호수를 따라서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DSLR인 내 카메라는 남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이 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거라서 더욱 그랬다. 혼자 다니면서는 늘 풍경 사진 위주였는데, 이 곳 만큼은 자미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로 싶었다.
적당한 바위 위에 카메라를 놓고 초점을 맞춘 후에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그런데 초점이 배경에 맞아 있어서 내가 중간에 끼면 흐릿하게 나왔다. 찍고 보면 자꾸만 뽀샵으로 붙여놓은 것 같아서 어색했다. 안타깝다.
여행을 하면서 인상적인 곳이란 문화유산이나 자연경관보다는 사람들이다. 아이델이 참 아름답고 멋진 곳이긴 하나 왠지 정스럽지 않았는데 이 곳 우준굘의 사람들은 인상부터가 온화한 느낌이었다. 호텔 사장님에게서 전통적인 디자인의 머리띠를 받은 내 기분인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글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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