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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터키(2010, 2015)

[흑해에서 빈둥빈둥] 제대로 된 영어...필요하기는 한데...배우기는 싫고...

by 그랑헤라 2018. 3. 15.

2010826일 목요일 날씨 - 흐리다 빗방울 떨어지다 맑다가...트라브존은 강한 바람.

 

호텔 엔사르. 전날까지의 이미지는 좋았는데....비추다. 아무리 시즌이 끝났다고 해도 이토록 성의 없는 영업을 할 수는 없는거다. 아침 8시가 되었어도 밥 줄 생각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스텝들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호수 건너편 모스크 뒤로 보이는 산동네까지 갔다가 빗방울이 떨어져서 돌아올 때까지도 자고 있었다. 100m 앞에 있는 숙소의 레스토랑에서는 벌써부터 사람이 북적거렸는데도 말이다.

 

10시가 넘었다. 밥을 달라고 해서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어제 체크인을 하면서 돈을 받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야일라(산 위의 방목지)에 가고 싶었다. 호텔에서 구한 정보에 따르면...,택시로는 120리라이고, 걷는다면 한 시간이 조금 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 걸어 올라가고, 잠깐 구경하고, 한 시간 내려온다면 트라브존으로 가는 2시 버스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딸랑 10분 걸었을까벌써부터 숨이 차기 시작했다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멋진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자동차가 한 대 올라왔다.

'바로 저거야히치하이킹을 하는거다.'라고 생각하고 손을 들려는 순간차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너 어디가니?" 머리에 터번을 쓴 사람이었다이 사람들은 뭐냐?

"야일라에 올라가." 하면서 위를 가리켰다.

"탈래?"

"오케이."

쿠웨이트에서 자동차로 여행을 왔단다베이루트에서부터 싣고 왔다는 물도 얻어 마셨다이 사람들은 야일라가 뭔지 몰랐다꼬불꼬불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갔는데도 야일라는 나오지 않고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우린 내려갈 건데...넌 어떻게 할래?"

"야일라는 얼마나 더 가야해요?" 가이드로 온 터키 아저씨에게 내가 물었다.

"25km."라는 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DOWN!"이란 말이 툭 튀어 나왔다올라온 만큼 걸어서 내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꼭 붙어서 함께 행동할 수 밖엔 없는거다혼자서 걸어왔으면 고생을 바가지로 할 뻔 했다.

 

내려오는 길에 쿠웨이트 아저씨들이 폭포를 보러가잖다웬 폭포?? 아주 가는 한줄기 실처럼 내려오는 폭포였는데....쿠웨이트사람들에게는 멋진 풍경인가 보다난 별론데....그냥 찍사를 해주었다내려와서는 우준굘임이 증명되는 장소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아저씨들과 헤어져서 자미쪽으로 가는 도중에 어제부터 산허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이 벗어졌다그러면서 산 정상이 보였는데.....저게 야일라였구나나무도 자랄 수 없는 고지대의 초원그냥 마음에만 남겨두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자미 옆에 있는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차이 한 잔을 시켜놓고 일기를 끄적이고 있었다혼자 다니면 이런 시간이 있어서 좋다그런데 쿠웨이트 아저씨들도 거기로 들어왔다하긴....이 좁은 곳에서 갈 곳을 뻔하니....아저씨들이 사주는 터키 커피를 얻어마시고 또 다시 수다.....내 영어 실력이 몇 개 되지 않는 단어를 이용하여 온 몸으로 하는 것이라서 정확한 표현은 할 수 없으나 느낌은 잘 전달이 되나보다하하하호호호....막힘이 없다.




2우준굘에서 하루를 더 묵고 트라브존으로 함께 가면 어떻겠냐는겠냐는 아저씨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옆에 앉아도 되?" 

터키에서는그것도 이런 보수적인 시골에서는 버스에 모르는 남녀가 함께 앉는 것이 쉽지 않은데....앤 뭐냐자세히 보니 자미 옆 테이블에서도 말을 걸었던 남자아이였다.

 

앉으라 했더니 그 후로는 끊임없이 떠들어댔다미국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 이중국적자는 그 사실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했다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냥 믿어주기로 했다마이애미에 살았고경제 관련 일을 하고파리를 세 번 가봤는데 멋지다느니잉글랜드에 사무실을 오픈하고 싶다느니....난 슬슬 이 젊은이의 수다에 지쳐가고 있었다.

 

"몇 살이야?"

"넌 상상하지 못할거야맞춰봐."

"24."

"아니그건 내 아들의 나이야." 그러자 남자아이는 대화를 중단하고 통로 건너편의 아저씨와 또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지금까지는 작업 멘트였니나야 고맙지뭐야내 나이를 반절이나 깎아주다니....'

그 아저씨가 내리자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이번에는 상큼한 대화가 이어졌다.

 

트라브존 메이단에서 내렸다시끌시끌 왁자지걸한 모습을 보니 생동감이 넘쳤다며칠 동안 도시를 벗어나 있었더니...이런 모습이 활기차게 보였다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이다.



 

메이단 바로 옆에 있는 호텔로 가니 비어있는 싱글룸이 없단다한 곳은 너무 후줄근하고두 곳은 빈 방이 없고...호룬호텔로 갔더니 싱글룸이 80리라란다....80리라하긴 에어컨도 없는 후줄근한 방이 35리라인데....그냥 묵기로 결정했다트라브존의 물가는 장난 아니게 높았다.


오늘도 점심 먹을 시간을 놓쳤다숙소를 정하자마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아타튀르크 광장의 식당 앞에는 야외테이블이 가득했다그 곳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라마단 기간이라서 안에서만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7시가 넘어야만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단다.



현재 시간 5시 30.

기다리기로 했다그 사이에 트라브존의 전망을 구경하러 보즈테페로 갔는데 오르두의 멋진 전망을 생각하니 트라브존의 전망은 실망이다바람도 많이 불어서 깃발처럼 펄럭이는 긴치마가 신경 쓰여서 바로 내려왔다.



아타튀르크광장 주변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재미있었다. 오늘이 마침 트라브존과 리버풀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라서 거리엔 온통 트라브존님 유니폼 천지였다.

 

차이 바흐체시(야외 찻집)가 있는 메이단 공원에서는 라마단 기간에 실시되는 무료배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은 후에 빈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간식으로 샀던 복숭아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들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속에서 나 혼자만 우적우적 깨물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너 한국인이니?" 멋지게 생긴 남자가 희끗한 장발을 날리며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영어로.

"그런데요...."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옆에 있는 여자가 반갑게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사진작가인 터키인 남편과 흑해로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여자는 매우 개성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말은 많이 하지 않았는데 포스가 그랬다. 개발이 한창인 터키 이야기와 한국 이야기와 여행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헤어졌는데 이 여자분도 여행작가라고 했다.

 

! 하는 대포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시합을 하듯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 많은 거리의 테이블에 빈 좌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약간 변두리로 가서 트라브존팀 유니폼 속에서 빈자리를 하나 발견하고 그 속에 끼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난 대체로는 한적한 시골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도시가 싫은 것도 아니다.

 

오늘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 중에는 북한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난 북한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해주고 싶은데.....영어가 짧아서 잘 되지 않는다. 영어가 짧은건지, 생각이 짧은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충분하게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영어 사용이 능숙했으면 좋겠다.


--------------오래된 글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옮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