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반이 목적인 사람이 자동차를 렌트하지 않고 곽지에서 숙박을 하면 엄청 불편하다. 곽지 출발, 성판악 휴게소 도착까지 최소 1시간 30분이 필요하다.
한라산만이 목적이라면 터미널 부근에 숙소를 잡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충북학생해양수련원의 저렴한 가격, 안전한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한라산 등반을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사방이 어두운 시각 5:55. 제주버스터미널행 202번 첫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나갔다.
제주에서는 제주버스 앱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청주버스는 앱에 표신된 시간 보다 일찍 와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 버스는 제 시간에 딱 맞춰온다, 거의.
곽지에서 터미널로 오는 사이에 벌써 해는 떠올랐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아침과 같은 분위기다. 아직 8시도 안된 시간인데 말이다. 성판악으로 가는 버스를 바로 탔다. 이 코스의 버스는 첫 차가 5시 30분에 있다. 이걸 타면 훨씬 좋은데... 어쩔 수 없다.
성판악 휴게소. 화장실 다녀오고, 신발끈 단단히 매고, 호기롭게 기념촬영까지 했다. 한라산 등산만 일곱번 했다는 준전문 등반가를 가이드로 즉석에서 구했다. 바침 그 분들의 코스가 우리와 같았다. 산에 오르는 걸 싫어하는 부인이 나이가 더 들면 한라산은 힘들겠다고 생각하여 남편만 믿고 왔단다.
........그런데 사라오름으로 갈라지는 부근에서 우리가 먼저 앞장섰고, 그 이후로 그 분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네 명이 하하호호거리며 등산을 시작했다.
성판악부터 진달래대피소까지는 비교적 쉬운 코스라더니, 우리 동네 우암산 초입보다 쉬웠다.
해발 1000m, 1100m, 1200m, 정말 쉬운 코스다. 지루하리만치 쉽다. 풍경도 비슷하다.
구름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맑은 날이다. 다행이다.
군인이 되기 위한 학교? 부사관학교? 아뭏튼 이 젊은이들은 산을 뛰어올라가기도 한다.
진달래 대피소.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는 곳이다. 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일부 학생들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올라갔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가만?? 저 낯익은 인물은 누구지?' 점심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교사가 눈에 띄었다.
'저 목소리는???'
포카라에서 만나서 푼힐을 함께 올랐던 바로 그 그 그....,
좀솜으로 넘어간 나와 달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떠났던 그녀,
베이스캠프를 찍고 포카라로 돌아온 후, 환한 얼굴로 우리에게 삼겹살을 쐈던 바로 그녀,
포카라 팀이 지리산 꼭대기에서 만나 회초를 풀기도 했고, 봉하마을에서 만난 후 양산에 있는 집에서 우리를 재워주었던 바로 그녀,
지윤이다!!!! 박지윤인가? 김지윤인가? 아뭏튼 지윤이다. 수학여행 한라산팀을 데리고 왔단다. 엄청 반가웠는데, 그런데 서로의 연락처는 묻지않았다. "쿨한 우리다."
하늘에 구름이 점점 생기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졌다.
진달래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힘든 코스라는데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헐, 집에서 미리 훈련하지 않았다고? 그냥 동네 뒷산을 두어 번 가 본게 전부라고? 그럼 어떻게 해? 힘들덴데...."
그러나 나의 기우였다. 동행한 친구는 늘 나보다 앞서서 갔다. 내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꽤 앞서서 걸었다. 한라산 다람쥐가 틀림없었다. 우리 동네 산에서 일곱번이나 훈련한 나보다 훨씬 잘 올라갔다. 같이 왔으나 등산은 따로 따로였다.
"우리 동네에 있는 검단산에 비하면 이건 껌이다." 한라산을 매우 우습게 보는 발언을 서슴치않고 했다.
나무가 점점 없어지는 한계점 위로 가면서 제주 전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름들이 작은 무덤처럼 보였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인지 안개인지...가득 차있다.
구름이 점점 낮게 내려온다. 백록담을 보기는 힘들겠고 생각하니 기운이 좀 빠졌다.
정상에는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곳이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운무가 자욱하고, 바람도 셌다.
지윤이네 학교 학생들이 빠르게 올라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다. 더 쉽고 재미있는 장소도 있었을텐데, 담임선생님을 따라서 고생을 자처한 이 친구들, 멋지다.
20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백록담은 이번엔 포기다. 그러나 정상에 서리가 맺혀있어서 나름대로 멋진 전경이다.
내려오는 길은 관음사 코스를 선택했다. 계속되는 계단이고, 부슬거리는 비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서 속도가 늦어졌다.
상고대가 피어있는 나무숲이 아름다웠다. 가을 속에서 겨울을 느낄 수 있는 한라산이다. 백록담을 보지 못했으나 이것으로 보상이 되었다.
조금 내려오니 다시 가을이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단풍이 아름답다. 특히 물은 없지만 계곡에는 단풍이 더 아름답다.
내려와서 관리사무소에서 한라산 등정인증서를 받았다. ㅋㅋ 기왕이면 주소도 넣어주고 얼굴도 넣어주지.... ㅎㅎ
천천히 10시간을 예상한 등산이었는데 8시간 정도 걸렸다. 그런데도 등산 후까지 기운이 팔팔했다. 물론 종아리가 좀 땡기기는 했지만... 일곱 번에 걸친 훈련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틈틈이 등산을 계속해서 곧 백록담을 보러 다시 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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