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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북수다

다시 읽은 책, 붉은 낙엽

by 그랑헤라 2019. 2. 27.

 

저 자 : 토머스 H. 쿡

번 역 : 장은재

출판사 : 고려원북스

출판연도 : 2013년 1월 (내 책은 초판 2쇄 2013년 6월)


토머스 H.

1947년 미국 앨라배마에서 태어났고, 조지아주립대에서 영문학과 철학, 뉴욕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뉴욕에서 광고기획자, 장애인복지협회의 타이피스트로 일했지만,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조지아로 돌아와 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를 가르치며 글쓰기에 전념했다. 매거진 애틀랜틱 먼슬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1980년 발표한 데뷔 소설 블러드 이노센스가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른 후 전업 작가의 길을 선언하고, 지금까지 두 편의 범죄 논픽션을 포함해 모두 26권의 책을 펴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탐구한 이들 작품들은 각종 추리문학상에 단골 후보로 올랐으나, 실제로 수상한 적은 별로 없다고 한다 .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인지 범죄소설인지, 심리소설인지 아니면 순수문학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굳이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인다고 한다.

(책에 있는 작가 소개를 거의 옮겼다.) 

토머스 H. 쿡은 대단한 비관론자이고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매우 어둡다고 한.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에릭 무어가 자신의 두 가족(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 그가 스스로 만든 가족)이 무너져가는 것, 또 무너뜨리는 과정을 50대의 나이에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의심은 산(酸)이다. 그게 내가 아는 한 가지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는 표면을 먹어 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중략) 에어리언이 부식성이 강한 액체를 토하자, 그 액체는 순식간에 우주정거장의 한 층을 먹어 치웠고 차례로 다른 층까지 먹어 들어갔다. 내 생각에 그 액체는 의심과도 같았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키며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의심은 언제나 바닥을 향한다.

책 114쪽에 나오는 글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문단에 모두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뭐, 그러니 어떻게 행동하자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로 읽으니 훨씬 개운했다.

처음 읽을 때는 범인이 누구인지,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나올지에 대해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니, 약간은 지루했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건너뛰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추리물도 범죄물도 아니다. 개인과 가족드라마이다. 그러다 보니 사건진행도 느리고, 소녀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에릭의 의심에 나도 점점 빠져들고, 괜히 나도 불안해진다.


토머스 H. 쿡의 글빨이 엄청나다. 필사는 미친 짓이다 라고 생각하는 내가 이 책은 필사를 하고 싶어진다. 물론 하진 않겠지만....

--- 워렌의 주위에 낮게 기운 해가 보내는 빛을 받은 나뭇잎들의 빛깔이 아도 찬란해서, 마치 빛이 일렁이는 유화 속을 걸어 오는 것처럼 보였다. 23쪽

--- 침대로 돌아왔지만 잠은 완전히 달아났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기분이었다. 사물의 본성에 내재한 무엇인가가 암암리에 내게 적대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내 오랜 확신을 약화시키는 느낌. 마치 집의 튼튼한 기초 아래의 땅속 어딘가에서 미세한 떨림이 생겨난 듯했다. 32쪽

--- 방문이 살짝 열리고 물기 많은 눈이 내게로 헤엄쳐 오는 것처럼 나타났다. 푸른색 작은 물고기가 수족관의 흐린 물을 헤치고 다가오는 것 같았다. 40쪽

--- 흐르지 않는 물이 고인 작은 연못처럼 생기 없는 푸른 눈이 나를 쏘아보았다. 88쪽

--- 빈스에게 모든 존재는 27킬로그램이 넘지 않으며, 122센티미터보다 클 수 없었다. 다른 모든 것은 티끌에 불과했다. 151쪽

--- 키이스의 얼굴이 내가 보고 있는 동안 나이를 먹는 것 같았다. 334쪽


메러디스는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 일이 망가지는 시점은 모든 것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할 때이다.'라고 말한다.  좋은 이야기를 사건이 두 번 반복된다라고 합니다. 이 소설도 두 인물, 두 사건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반드시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에릭이 아들로 속해있던 가족의 불행이 자신이 만든 가족에게도 그대로 나올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든 에릭의 벽돌그릴을 보고 메러디스는 말했다. 

'이 벽돌 그릴은 사물의 속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에릭) 사물에 관해 바라는 속성에 대한 은유다.' 

결국 그토록 견고하다고 믿었던 에릭의 가족은 에릭의 의심과 오해로 서서히 균열을 만든다. 한 번 만들어진 관계에서의 균열은 다시 원상태로 만들기 어렵다. 


독서회에서 해볼 수 있는 질문들: 

1. 붉은 낙엽은 추리소설인가?

2. 왜 일본단풍이 계속에서 등장하는가?

3. 나는 가족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괜찮은 딸(아들), 아내(남편), 어머니(아버지)인가?

4. 당신은 진실 없는 평화를 원합니까, 평화가 없는 진실을 원합니까?

5. 결말에 있는 반전은 그 앞부분에서 적당하게 실마리를 주어야 독자들이 무릎을 친다. 실마리가 너무 없으면 반전이 뜬금없고, 너무 많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당신을 설득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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