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스페인(2024)

[론다] 내가 론다에 다시 간 까닭

by 그랑헤라 2024. 4. 21.

2024년 2월 25일

2주 전에 여행사를 통해 세테닐 데 라보데가스와 론다를 다녀왔다. 그 때는 여행사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승차하는 방식이어서 맨 앞자리는 물론이고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말라가와 론다 사이의 구릉에 펼쳐진 초원 풍경은 시원하고 멋졌는데 그걸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서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제대로 계획하고 론다에 다시 다녀오기로 했다. 기왕 다시 가는 것이니까 누에보 다리 아래까지 가보기로 했다.

구글지도에서 확인한 경로는 이랬다. 비에호 다리를 경유해서 알모까바르 문을 지나 호야 델 타호 전망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누에보 다리를 경유해서 버스터미널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3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아서 12:30분에 론다에 도착하는 아반사버스를 탔고, 4시에 출발하는 다마스버스를 이용했다. 아반사 버스는 3시간 10분이나 걸리지만 경유하는 작은 도시들을 보고 싶었다.

빨강-아반사버스, 파랑-다마스버스(다마스 노선은 정확하지 않아요 대충 이 노선일 듯)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고 싶어서 일찌감치 줄을 섰고 결국 맨 앞자리에 앉았다. 스페인 버스는 맨 앞자리가 경로우대석인데 그냥 모르는 척 했다. 눈치가 많이 보였지만 이번 딱 한 번만이다. 출발한 때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마나 괜찮았다.

탁 트인 앞으로 부자동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지중해 휴양도시가 마르베야까지 계속 이어졌다.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뒤에 앉은 우엘바에서 휴가차 온 노부부가 지나는 동네마다 알려주고 론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었다.

스페인의 상징인 들판 조형물 토로를 이번에는 처음 봤다. 엄청 반갑다.

버스가 마르베야 터미널에 도착하자 승객이 우르르 내렸다.

'듣던대로 큰도시가 맞나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는데 버스기사가 와서 차를 바꿔타라고 알려주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나를 포함한 외국인 승객들이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바꿔탈 때 보니까, 환승하는 손님들이 우선이고, 마르베야에서 타는 승객은 그 뒤에 승차를 하게 했다. 어쨌거나 재빠르지 못했던 나는 앞자리를 놓치고 말았다.

마르베야에서는 10분 정도 정차했다. 그 사이에 큰 배낭을 멘 외국 여자아이와 기사가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여자 아이는 현금 승차를 하기 원했고, 기사는 표를 사오라고 했다. '기다려 달라', '안된다, 정시에 출발한다.' 여자아이는 이미 버스에 올라서 'Por favor'를 연발하며 부탁을 했다. 버스기사는 'Sí'라고 대답을 한 후에 여자 아이가 내려서 조금 멀어지자 문을 닫고 냉정하게 출발했다.

그 여자아이와 기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여자 - 여기는 배차가 하루에 두 세번 밖에 없어서 제 시간에 버스를 타지 못하면 그 날 일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매표소에서 표를 사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린다. 앞에 사람들이 몇 명만 기다리고 있어서 10분이 훌쩍 넘을거다. 그러니 현금으로 태워달라.

기사 - 규정상 현금으로는 안된다. 미리 준비를 못한 네 잘못이다. 다른 승객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도 멋졌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니 또 다른 풍경이다.

 
 

론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론다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여행 로망인 곳 중에 하나다. 그래서 투우경기장에 한국어 팜플랫은 물론이고 이렇게 화장실 안내도 한글이 있더라. 화장실 사용료는 0.5유로.

 
 

계획했던 대로 골목 골목을 돌아서 비에호 다리로 향했다. 사람들이 사는 골목은 누에보다리만 보고 왔던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산미겔 다리에서 비에호 다리를 찍어주고, 비에호 다리로 갔다. 뭐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런데 누에보 다리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엄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방향에서 론다는 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다.

 
 

골목 골목을 돌아서 알모까바르문으로 가는 길, 좁은 골목 막다른 길에 멋진 외벽 건물이 눈에 띄었다. 구글지도에 '전망대가 있는 화려한 성당'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고, 전망대에 사람들이 있었다.

'전망대는 지나칠 수 없지.'

입장료를 4.5유로나 내고 들어갔다. 성당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구석구석 들어가 볼 곳이 많은데 제단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것은 현기증이 나게 했다. 4.5유로는 전망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했다. 하루 종일 앉아있을 수도 있을 정도로 멋진 론다의 모든 곳을 보여주었다. 그 곳에 앉아 간식으로 준비한 사과 1개를 깨물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햇살이 좋은 곳에 앉아서 카페콘레체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2시간 밖에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지도를 잘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알모까바르문에서 방향을 잃고 잠시 헤멨다. 길이 너무 많잖아...

프라도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꽤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했다. 올라올 걱정은 되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누에보 다리가 보였다. 다리가 나타나니 기운이 났다. 다시 올라가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누에보 다리가 잘 보이는 곳에서 준비해 간 하몽 샌드위치를 씹으며 다리를 실컷 봤다.

사실, 다리의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 볼때가 가장 장관이다. 아래에서는 가까이 갈 수 없으니 감동이 덜하긴 하다. 그런데도 위에서 내려다 보면 까마득한 아래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면 호기심이 생기고, 나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파라도르 옆의 전망대에서 입장료 2.5유로를 내면 다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건 하지 않았다.

터미널에 여유있게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었다. 그리고 앞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시간에 맞춰 차를 탔다.

그러고도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이 풍경을 제대로 보려고 다시 론다를 찾았던 것이다. 마침 구름이 많은 날이어서 더 좋았다.

 
 

해의 위치까지 생각해서 버스기사쪽 방향에 앉았는데, 반대쪽 풍경이 더 멋져 보이는 것은 남의 떡이라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