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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스페인(2024)

[세비야] 15000걸음 걸었지만 아무것도 못한 한나절

by 그랑헤라 2024. 4. 21.

2024년 2월 27일

말라가를 떠나는 날,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내가 여행복은 있는지 터미널에 도착하자 그렇게 굵어지기 시작했다. 전망을 잘 보려고 1.5유로 추가요금을 내고 맨 앞자리를 샀는데 망했다.

캐리어를 싣고 조금 늦게 버스에 올라갔을 때, 내가 예약한 창가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분명히 난 맨앞 창가자리를 예약했었다. 내 표를 보니 3번? 헐. 왜 3번이야? 분명히 창가를 클릭했는데...(다음 일정을 예약하다가 알았다. 여기는 3번이 창가, 4번이 통로다. )

그렇게 세비야로 향해 달렸다.

스페인은 산이 많은 나라이지만 말라가-세비야 구간은 낮은 구릉이 완만하게 펼쳐져 있고 거기에 올리브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말라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을 지나자 구름은 조금씩 걷혔고, 낮은 구름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풍경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었다.

 
 

숙소는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에어비앤비로 했다. 저 층계의 압박!! 밖에서 보았을 때 엘리베이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적어도 3층은 아니길 바랬다. 그나마 2층인 것이 천만 다행이다. 독립한 두 아들이 사용했던 작은 방에 여행자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중년의 여자였다. 친절하기는 하지만 수더분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좀 조심스럽다. 하긴 그래야 이런 숙소도 운영하고 그러지. 어쨌든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무작정 집을 나섰다. 혼자 사용하는 공간이었으면 게으름을 피우고 느즈막히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관광객이 드문 거리에 있는 바에서 맥주 하나와 타파 한 접시로 가볍게 점심을 때웠다.

세비야는 공기가 다르다. 비교 대상이 말라가 뿐이지만 어쨌든 더 넓고, 더 화사하고, 더 활기차고, 더 폼난다. 말라가는 여유롭고 느릿한데 여기 세비야는 여유롭지만 술렁거린다.

 
 

숙소 근처에 있는 세비야 미술관을 보려고 했는데, 월요일에는 휴관이다. 남들처럼 대성당, 알카사르, 스페인 광장을 가보기로 했다.

대성당. 인터넷 티켓을 구입한 사람들을 위한 입장문이 따로 있는데 줄이 엄청 길었다.

 
 

성당을 반바퀴 돌아 현장 매표소에 왔는데 여기도 역시나 줄이 좀 있다. 세비야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과 히랄다탑이지만 나는 별다른 고민없이 패스했다. 덜 유명한 알카사르를 가지 뭐.

 
 

이게 무슨 일이야? 성당 옆에 있는 알카사르이 줄이 더, 훨씬 더 길다. 도대체 세비야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게 바로 오버투어리즘?

 
 

관광용 마차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운행을 쉬고 있는 마차로 다가갔다.

"저 줄이 알카사바 입장줄이예요?"

"응, 맞아."

"헐, 10년 전에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들어갔는데..."

"10년 전? 이 사람이 10년 전이래."

"10년 전에 나는 투우사였지, 지금을 마차꾼이야." 옆에 있는 아저씨의 넝~~담.

현지인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숙소를 세 놓고, 직업을 바꾸고, 일을 한다. 관광객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니 오버투어리즘은 아닌 듯.

 
 

이제 스페인 광장이다. 거긴 그냥 광장이니까 입장료도 뭐도 없으니까 그냥 가면 되겠지. 지나는 길에 본 궁전을 보자 10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지, 그 때도 이 궁전을 보면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항해시대 당시 독점 항구였던 세비야의 위용을 보여주는 산텔모궁전. 지금은 안달루시아 주정부건물로 정원과 성당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공식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하면 된다는데...가볼까? 말까?

스페인 광장. 여기도 관광객이 장난 아니다. 덕분에 마차는 성업중이다. 광장 앞 수로의 보트도 성업중이다.

 
 

광장 곳곳의 거리 예술가들도 성업 중이고, 아이들을 위한 자전거 투어(학교 현장학습인 듯)도 성업 중이다.

 
 

날이 기가 막히게 좋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던 도시 세비야, 긴 여정 중에 잠시 쉬자고 했던 세비야에게 미친 듯이 걷고 있다. 세비야는 그렇게 관광객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 도시다.

 
 

 

앗!!! 비교적 최근에 핫플레이스가 된 메트로폴 파라솔!! 잊어버릴 뻔 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갔다. 오렌지 나무 가로수를 지나고, 좁은 골목을 돌아서 돌아서... 종이 지도를 들고, 거리 이름을 올려다 보며 길을 찾아가며 다닐때가 낭만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거리를 걷는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카페를 발견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몇 명 있는 걸 보면 맛집이 확실하다. 나도 마침 출출하던 참이라 츄러스와 초꼴라떼를 주문했다. 여기 맛있네.

 
 

저기, 골목 사이로 파라솔의 일부가 보인다.

스페인 광장에서부터 골목 밀림을 찾아 오는 길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지만,

결국 목적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