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나오는 모든 시각은 현지의 시각.>
6월 6일 화
인천 15:10 출발, 홍콩 17:50 도착, 1시간 15분 대기 후 19:10에 오클랜드로 가는 뉴질랜드 항공을 타면 그 다음 날 그러니까, 7일 오전 10시 정도에 오클랜드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홍콩 공항에서 뉴질랜드 항공을 타는데 문제가 생겼다. 뉴질랜드에서 나오는 비행기 티켓이 없어서 탑승을 거부당했다.
여행을 계획할 당시의 내 생각은, 11월 1일에 시드니 - 인천 항공권(아시아나 마일리지로 미리 구입)이 있으니 그것으로 리턴 티켓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고, 인천 공항에서는 인정받아서 쉽게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었다. 그런데 거부당했다.
호주로 가는, 아니 뉴질랜드에서 나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일단 내가 타려고 했던 비행기는 시간이 없어서 탑승이 불가능했다. 캐세이퍼시픽 환승카운터로 가서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2시간 후에 있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티켓을 끊으려는데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홍콩 공항의 무료와이파이는 느려터.졌.다. 호주행 비행기 표도 사고 호주에 입국하기 위한 ETA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있었다.
내 머리에선 증기가 부글부글 오르고 있었다. 안내카운터의 그 친절한 직원이 성심껏 도와주었으나, 난 이미 이성을 잃었다.
"나,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그 친절한 직원은 필요한 수속을 밟아주었다. 공항직원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승홀을 빠져 나가서 입국심사대로 갔고, 입국신고서를 쓴 후에 입국심사를 받고, 내 짐을 찾아서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홍콩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당일에는 캐세이 퍼시픽, 아시아나, 대한항공이 있었다. 자정 즈음에 4편의 항공편이 있었는데, 대한항공은 탈 생각이 없었고, 아시아나 티켓팅 카운터는 10시 30분에 열린다고 해서 캐세이퍼시픽 티켓팅 카운터로 갔더니, 헐, 인천으로의 편도 항공권이 90만원 정도였다. 조금만 냉정하지 않았으면 그냥 저지를 뻔 했다. 흥분을 해서 기본 밖에 하지 못하는 영어가 문법 무시, 의미 무시, 더 제멋대로 나왔다.
“조금 생각해 보고 올께요.”
아시아나 카운터가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냥 홍콩에서 하루 묵으면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부킹닷컴에서 찾아보니 700홍콩달러(10만원 정도?)의 호텔에서 묵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현금지급기에서 1500달러(216,000원 정도?)를 출금했다. 그리고 관광 안내소에서 물어보니 공항 근처에 둥청이라는 곳에 리즈너블한 호텔이 2, 3개 있을 거라고 하고, S1 버스를 탈 수 있도록 잔돈으로 바꿔주었다.
공항 밖에 있는 S1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자에게 물어봤더니, 매우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자신이 둥청에 사는데 호텔이 하나 밖에 없고 가격이 비쌀 거란다. 이미 늦은 시간, 나에겐 선택을 여지가 없었다. 그 여자와 함께 둥청에 갔더니 헐, 노보텔이 보였다. 호텔이 하나 밖에 없고 케이블카 타는 곳이라고 해서 그냥 허름한 관광지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파트 밀집 지역에 시티게이트라고 하는 대규모의 쇼핑센터가 있었다. 노보텔을 그 쇼핑센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거금 1320홍콩달러(19만원!!!!)를 지불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비싸건 말건 우선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안함과 흥분으로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시원하게 샤워를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 이제 무엇부터 할까?
우선 덥고 습한 홍콩을 떠나야 하니까,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샀다. 다음 날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이스타항공을 15만원에 구입했다.
'집으로 내려가야 하나? 서울에 묵으면서 다시 준비를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공항 근처에 묵으면서 다시 출발할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그 후 폭풍,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그 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인천 공항 국제업무지구에 25,000원을 하는 호스텔을 예약했다. '하루 정도는 도미토리에서 묵어도 괜찮겠지.'
호주에 입국하기 위한 관광비자를 받아야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안내가 잘 되어있는 블로그가 있었다. 그리 어려워보이지는 않아서 사이트로 들어가서 그 블로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내용을 적고 20호주 달러를 결재했다. 이제 이건 한국에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일단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비행기에서 준 점심을 먹은 후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가서 뭘 사먹기도 싫었다. 호텔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걸로 주린 배를 채웠다.
노트북, 핸드폰 충전도 충분히 하니 여유가 생겼다.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밴드와 카톡을 확인했다. 내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읽기만 하고 말았다. SNS 중독자인 내가 글을 올리지 않는 것에는 대단한 인내가 필요했다.
7일 수요일
아침 햇살이 눈부셨고, 뭉게구름이 커다랗게 피어오른 전형적인 열대지방의 아침이었다. 밖을 보니 가랑비가 조금 내렸고 무지개가 공원에 걸려있었다. 홍콩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 하나를 먹었다. 그리고는 곧 들어왔다. 열대지방의 후끈함이 아침부터 시작이었다.
천천히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나와서 공항까지 운행해 주는 무료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13:00에 출발하는 이스타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우울한 나와는 달리 하늘은 쾌청하고 구름은 몽실거렸고 하늘과 바다와 구름이 어울어진 창 밖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17:40분. 예정된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예약한 숙소에 연락을 해서 가는 방법을 물어본 후에 쉽게 찾아갔다.
공항트렌짓호스텔은 국제업무지구의 한 빌딩의 일부를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리 쾌적하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인가? 4인실을 혼자서 사용하게 되어서 마음은 편했다.
짐을 풀자마자 호주비자발행국에서 확인하니 내 비자가 승인난 것 같았다. 승인이 난 것이 확실한데 양식이 너무 허술해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숙소 카운터로 가서 프린터를 했다.
그리고는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는 항공권 사냥에 나섰다. 가격과 시간면에서 캐세이퍼시픽과 뉴질랜드 항공 연결편이 제일 합리적인데 다시 홍콩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서 더 비싼 일본항공과 뉴질랜드 항공을 연결해서 끊었다. 그리고 오클랜드에서 브리즈번으로 가는 항공권까지 끊으면서 다시 여행을 준비를 마무리했다.
그 사이에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테리네 집에 다시 갈 수 있다는 확인 메시지를 보냈고, YMCA호스텔에서는 하루치 숙박비가 결재되어 나갔다.
내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다. ㅜ.ㅜ
8일 목요일
일찍 눈을 떴다. 자,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11:10 일본항공으로 나리타로 출발 - 13:45 나리타 도착 - 4시간 45분의 긴 기다림 - 18:30 뉴질랜드항공으로 오클래드로 출발 - 다음날 8:05 오클랜드 도착인 일정이었다.
여유있게 수속을 밟기 위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고, 공항내 무료셔틀버스(내가 별걸 다 타본다.) 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밟았다. 오전에는 공항이 이렇게 한가한건가? 숙소를 출발한 후 한시간 만에 출국심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네.
모든 준비가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고, 통로쪽 자리에 앉았으나, 옆자리가 모두 비어서 창쪽으로 옮겨 앉았다. 간간이 창밖을 내려다 보았는데 산악지역을 지나가고 있었고, 가만히 살펴보니 평창이 분명했다. 저건 용평 그 옆이 알펜시아, 저 호수가 평창에 있는 작은 댐, 이름이 뭐였더라.....(후에 찾아보니 도암호이다) 그리고 저 산 위의 황토지가 안반데기다. 요즘 비가 오지 않아서 안반데기의 배추가 자라지 않는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그래서 저렇게 붉은 땅이 그대로 드러났구나.
짧은 비행시간이라 간단한 샌드위치를 주었다. 이미 공항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은 나는 샌드위치와 오예스를 가방에 넣어두었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긴 시간 동안 비상식량이었다.
나리타 공항의 2터미널에서 1터미널로 옮겨왔더니 맥도널드가 있는 부근에 환승객을 위한 공간이 널직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눕거나 기댈 수 있는 소파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난 비행기의 움직임이 활발한 창가 쪽에 있는 의자에 않아서 밖을 보며 책을 폈다.
'아, 아에로메히코다!' 멕시코라는 말을 들어도 참 반갑다. 저 비행기를 타고 그냥 멕시코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승 5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인터넷도 하고 책도 읽어도 지루했다. 슬슬 공항 구경을 다녔더니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상품들도 어찌나 앙증맞은 것이 많은지, 직원들은 또한 어찌나 친절한지(이게 사실 과하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리저리 구경도 하면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출발 안내를 하는 화면에 오클랜드행 뉴질랜드 항공이 뜨자마자 환승티켓을 받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서는 인천에서 받아간 내 티켓을 확인하고는 20분 정도 기다리란다. 확인한 후에 불러주겠단다. 뭘 확인하는데?
이게 진짜 내 불행의 시작이었다.
얌전히 앉아서 한참을 기다리니 스텝 하나가 와서 따라 오란다. 데스크에 있는 인상 좋은 여자가 뉴질랜드 이민국과 전화를 하고 있다가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리턴 티켓은 있느냐?”
“있다. 오클랜랜드에서 브리즈번으로 갈거다. 호주 비자도 받았다.”
“티켓을 보여줘라”
난 메일을 열고 당당하게 보여줬고, 시드니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티켓과 호주 입국비자까지도 보여줬다.
“전화를 받아봐라. 이민국 직원이 너랑 직접 대화하고 싶어한다.”
“What? 전화로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리고 얌전하게 전화를 받았는데 이것 저것 묻는 것이 참 많았다.
왜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샀느냐? 왜 홍콩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느냐? 왜 다시 산 표는 일본을 경유하느냐? 뉴질랜드에는 왜 방문하느냐? 직업이 뭐냐? 어떻게 시간동안 여행이 가능하냐? 숙소는 정했냐? 주소를 불러라, 뉴질랜드에 아는 사람은 있느냐?, 뉴질랜드 어디 어디를 여행할 거냐? 어학원은 정했냐? 영어를 잘 하면서 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느냐? 심지어는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느냐까지도 물어보더라. 아마도 장장 한 시간은 전화를 했던 것 같다. 보딩 시간 전까지도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결국 그 이민국 직원은 내가 대답한 것을 다시 한 번 나열하더니 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단다. 그러니까 뉴질랜드에 오고 싶으면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서 오란다.
'치사한 놈! 내가 그럴 정도를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 난 그저 이 더운 여름은 시원한 나라에서 영어나 실실 배우면서 있고 싶을 뿐이라고! 그런 대접을 받아가면서까지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니다!'
라고 소리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를 배워야하는거다. 항의하고 싶을 때, 욕하고 싶을 때 제대로 말을 해야 되니까....
일본항공 스텝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2터미널로 돌아가서 일본 입국 수속을 밟고, 기다렸다가 짐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에 하루 묵을 나리타 게이트웨이 호텔을 예약했다. 다행히 가격이 적절한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호텔 무료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공항의 검색대와 호텔 로비에서 우리 말을 하는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무지 반갑고 괜히 그 사람들이 좋아보이더라.
특히 나리타게이트호텔의 로비에서 일하는, 우리말을 잘하는 그 직원은 엄청 섹시하게 생겼다. 이 엉망진창의 상황에서도 남자의 외모에 눈이 가는 내 얇팍함. 그래도 후에 일본에 올 기호가 있다면 일본말을 좀 배워와야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레스토랑으로 내려가서 파스타와 샐러드와 맥주로 배불리 저녁을 먹고 나니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그냥 누워 버렸다.
'하루 더 묵으면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지 뭐.'
9일 금요일
커튼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잠이 깼다. 5:50분이었다. 맞다, 일본이 우리보다 30분 정도 해가 일찍 뜨는 거지.
자, 이제 뭘해야 하지?
엎어지면 쉬어간다고, 일본에 온 김에 일본 여행이라 해 볼까? 그러기엔 내 짐이 만만하지 않다. 몇 달 살기 위해 싼 짐이라서, 또한 겨울인 나라로 가기 위한 짐이라서 들고 다니기엔 너무 무거웠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없다.
정식으로 학생 비자를 받아서 호주로 가볼까? 어학원 사이트를 뒤져보니 적어도 한 두 달 전에는 준비해야 한단다. 이것도 포기.
여름에도 시원한 더블린으로 가볼까? 그런데 여긴 물가도 너무 비싸고, 젊은 사람들에겐 좋을지 몰라도 나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는 그리 좋은 것 같지가 않았다.
스페인으로 가볼까? 더운 여름을 피해 시원한 곳으로 가려는데 스페인은 날씨가 너무 덥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라고사는 벌써부터 30도에 육박한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다. 일단 집으로 가자 생각하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니 저렴한 이스타항공은 다음 날 출발이고, 수하물 초과 비용까지 하면 당일에 출발하는 아시아나나 그게 그거였다. 아시아나 13:50 항공권을 끊었다.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올라와서는 짐을 정리했고, 10시 15분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이제는 내 집처럼 편안해진 공항에서의 수속을 밟고 인천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화나고 쓸쓸한 패잔병이 되어....
3박 4일 동안 공항들을 전전긍긍 방황하며 다닌 결과,
1. 엄청난 돈을 낭비했고(대충 얼마인지는 알고 있으나, 그 금액을 쓰거나 말하는 순간 기분이 훨씬 더 나빠질 것 같으니 금액은 말하지 않겠다.),
2. 긴 시간을 날려보냈으며,
3. 5개월 동안 어학연수와 여행을 떠났다고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고민이 쌓였고,
4. 특히 내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라면,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여유롭고 인정 많은 곳이 아니라는 것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사는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 불편해하고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제재를 받으며 살고 있고 또한 더 어려운 나라들에게 그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또한 양증맞은 초밥모양 자석과 부드러운 치즈케잌 두 개가 덤으로 생겼다.
남은 문제가 몇 가지 있다. 5개월간 들어놓은 장기여행 보험이 아직도 살아 있으며, 호주-인천 아시아나 항공권 (그것도 비지니스석이다.)이 있다는 것이고,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족 : 이층에 사는 현근이에게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걸렸다. 살다 살다 입국 거절당한 사람은 처음 본단다. 겨우 17년 살았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난 53년 동안 못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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