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황동혁? 마이파더, 도가니, 수상한 그녀. 한국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구나. 하지만 난 황동혁 감독의 작품을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극장을 찾았다.
김훈 원작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불행히도 소설도 안봤다. 그렇다고해서 병자호란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명확하게 아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아주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 외에는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일단 영화를 봤다는 말이다.
청에 무릎꿇고 일단 전쟁을 막고 백성들이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실리외교를 택한 최명길(주화파)을 연기한 이병헌, 배우가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사람이기에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는 이병헌은 내가 그리 선호하는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달콤한 인생부터 이상한 놈을 거쳐 최명길 역까지.... 이병헌의 낮은 목소리, 모든 감정을 담고 있는 눈빛. 인정!!!
믿고 보는 배우 중에 한 사람인 김윤석. 청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척화파의 대표주자인 김상헌 역이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 배역이다. 그러나 감독은, 아닌가? 소설 원작에도 그런가? 어쨌든 적당한 각색으로 김상헌을 꽤 괜찮은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그것 마저도 김윤석의 힘이리라.
최명길과 김상헌이 임금 앞에서 움직임없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이 영화의 최고 장면 중의 하나이다. ㅎㅎ 최고 장면이 좀 많다.
조선 최고의 찌질캐릭터인 인조. 역시 이 영화에서는 그나마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박해일. 연애의 목적에서 얼마나 나를 열받게 했던가. 그 영화의 캐릭터가 너무 강렬한데, 의외로 찌질한 역을 너무 잘 소화한다. 그런데도 박해일은 미워할 수 없다.
남한산성 안에서 대장장이로 살던 서날쇠.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고수인지 몰라서 궁금해하다가 자막이 올라갈 때 확인을 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고수가 남자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와우, 여기서는 상남자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이시백 역의 박희순. 박희순이 멋진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여기서도 역시 그의 매력을 모두 쏟아냈다.
칸의 역할을 맡은 김법래. 뮤지컬배우답게 중후한 목소리... 그런데 진짜 청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 어찌 그리 만주어를 실감나가 잘하는지... 만주어를 하는 세 배우 모두 진짜 중국사람인 줄 알았다.(처음에는 중국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청나라는 만주어를 사용했단다.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만주어를 마치 진짜 청나라 사람인 것처럼 구사해서 깜놀). 완전 멋진 왕이면서 전술가로 등장한다.
용골대의 허성태 배우. 이 배우 역시 자신의 몫을 200% 이상 해냈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배우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 눈여겨 볼 배우.
조선인이면서 청나라의 통역관을 하고 있는 정명수역을 맡은 조우진.
'너는 어찌 조선의 사람이면서 청을 위해 일을 하는가?" 영의정 김류가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본디 노비로 태어났습니다.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지요.' 그 한마디로 그의 모든 역할은 다 이해가 되었다.
영화에서는 몇 번의 전투씬이 나오기는 하는데... 난 전투씬은 거의 눈을 감고 보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영의정 김류 역은 송영창 배우가 맡았다. 요랬다 조랬다 말을 바꾸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울트라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데, 그래서 김류역을 미움 받는 역할로 만들었다 보다. 참 답답한 조정이었고,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봐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딱 두 사람의 여자 중의 한 사람. ㅎㅎ 아주 귀엽다.
영화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겁고 우울했다. 그러나 진지했고,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배우들은 치열하게 연기했고, 배역에 몰입했다. 주연, 조연 심지어는 단역까지도 아니 엑스트라까지도 최고의 몰입을 보여주었다.
임금과 양반들에게 불만을 표현한 병사를 베려고 하는 그 장면에서 영의정 이류를 노려보던 그 군중들의 눈빛이며, 대사가 있었는지 기억도 없는 대제학 역을 염쟁이 유씨로 유명한 연극배우 유순웅이 맡았을 정도이니, 배우 선정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도대체 이 영화를 혹평한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든 첫 생각은 원작을 봐야겠다는 거였다. 영화에 관객이 500만도 안들었다는게 미스테리다. 내 생애 최고의 영화 중에 하나가 될 듯한데...
음악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다. 처음에 그 이름을 화면에서 보았을 때, 클래식 음악 방송에서나 듣던 이름인데, 영화음악을 맡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음악이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아니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r극적인 장면에서 음악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극적 효과를 내는 그런 절제된 음악을 사용하였다.
또 하나의 사족 - 그들이 사용한 만주어에서 내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던 단어 '호토' 성이라는 의미이다. ㅎㅎ 오래 전 실크로드에 빠져 있을 당시 들었던 말, 카라호토 흑성, 카라데니즈 흑해, 가라말 제주도의 검은 말. 그래서 터키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제주까지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나 뭐래나...
참, 참, 참! 옷 이야기를 빼 놓을 뻔 했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백성들의 옷... 진짜 추워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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