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이야기/북수다

나는 잠깐 설웁다 - 허은실

by 그랑헤라 2018. 1. 28.

 

시는 오고,

수필은 끌고간다.


시인은 이렇게 시를 설명했다. 내가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마음에 확 와닿는 표현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시인이 되었겠다. 


'고향에선 일찍 죽은 여자의 입에

쌀 대신 쇠를 물렸다고 한다.


입숙에 앉았던 물집이 아물어간다.

혀는 자꾸만 상처를 맛보려 한다.'


"이게 뭔말이지?" 표지 안쪽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부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단 네 편의 시를 읽고 책을 덮었다. 작가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시는 읽는 독자가 느끼는 것이라 했는데, 난 혼란에만 빠졌다. 

할 수 없이, 예전에 빨간책방(팟캐스트)에 나왔던 허은실작가 편을 찾아 들었다. 진행자인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작가는 엄청 좋은 시라고 칭찬을 하면서 그들 역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했다. 어쨌거나 작가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집을 폈다.


바람이 부네, 누가 이름을 부르네


입안 가득 손톱이 차올라

뱉어내도 비워지지 않네

문을 긁다 빠진 손톱들

더러는 얼굴에 붙어 떨어지지 않네


숲은 수런수런 소문을 기르네

바람은 뼈마디를 건너 

몸속에 신전을 짓고

바람에선 쇠맛이 나


어찌 오셨는지요 아흐레 아침

손금이 아파요

누가 여기다 슬픔을 슬어놓고 갔나요

내 혁 말을 꾸미고 있어요


괜찮다 아가, 다시는

태어나지 말거라


서 있는 것들은 그림자를 기르네

사이를 껴앉은 벽들이 우네

울음을 건너온 몸은

서늘하여 평온하네


바람이 부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네

몸을 벗었으니 옷을 지어야지


이 시를 읽는 중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물이 점점 차올를 때의 모습, 그리고 그 다음의 상황들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괜찮다 아가, 다시는 / 태어나지 말아라......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시, 제망매 -흰 꽃들의 노래는 그 18살 아이들에게 제문을 올리는 것 같았다. 화려하게 피어보지도 못한, 순결한 열 여덟살 아이들의 수런거리는 재잘거림이 들려오는 듯 했다.


무렵


고모는 늦게까지 잤다


비석치기를 하다 말고

우리는 메뚜기를 잡았다

점심때 마당은 햇살이 캄캄

봉당엔 고모의 구두가 그대로였다


서울은 잠을 안 재우나


무덤으로 올라가 

잔디 씨를 훑었다

하얀 편지 봉투에

새까만 잔디 씨가 가득


교회 아랫집 오빠는 

낟가리 뒤에서 

고야를 쥐여주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삼촌은 고래처럼 입으로 물을 뿜었다

벽에 걸린 해군복이 밤에도 희었다


삼촌의 바다는 얼마나 클까


막차에서 얼굴이 하얀 여자가 내렸다

삼촌의 이불에 검붉은 얼룩이 생겼다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면

먼 데서부터 바다가

달려왔다.


어릴 적에 내가 살던 시골마을을 생각나게 하는 시이다. 다닥다닥 잇닿아 있는 나즈막한 지붕들 아래서 고만고만하게 간신히 살아가는 마을, 도시로 나간다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공장으로 가는 것.... 그런데 낟가리 뒤에서 교회 오빠는 왜 고야를 쥐워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뭘 말하지 말라는 것일까?


치질


밑구녕까지 꽃이 피었다


징후도 없이 

예후도 모르는 채

부끄러움을 앓는다


걸음마다 꽃이 도져

앉지도 돌아눕지도 못하게 하는 


괄약근이여


치질로 고생하는 환자의 아픔 보다도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쾌락의 정원이 먼저 생각났다. ㅋㅋ



처음엔 읽기가 힘들었던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가 점점 마음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2월 8일 목요일

독서회에서 이 책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 시집을 받은 날에 단톡방에서 난리가 났다. 

'이게 뭔말이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등등

이 책을 추천한 나는 너무 민망해져서, 그리고 나도 무슨 말인지 잘모르겠기에 빨간책방 '허은실'편을 올려주었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할 이야기가 너~~~~어무 많았다. 많은 부분을 공감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이 시집을 추천한다고 했다. 단, 뒤쪽에 있는 시 하나를 보여주고 공감하는 사람에게만.,ㅎㅎ.

같은 시를 읽고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던 독서회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