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이야기/북수다

라틴어수업 - 한동일

by 그랑헤라 2018. 2. 27.

 

내 취향의 책은 아니지만 독서회에서 읽는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가, 꽤 흥미롭게 마무리를 했다.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신부가 서강대학교에서 했던 라틴어 수업 강의를 묶은 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이 어학 교재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고, 수업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했던 라틴어와 관련된 역사, 문화, 음악, 신학, 철학 등을 어울러서 했던 삶에 대한 고찰이다.

스페인어를 어설프게 공부한 나에게는 스페인어 공부 중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해소되는 책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핸드폰으로 찍어놓았다. 그리고 정리를 하려고 다시 보니....내가 왜 이 부분을 찍었는지 이유를 까먹었다. 그 때 그 때 적어놨어야 했는데...


30세는 이립, 책임지는 나이이고 40세는 불혹, 흔들리지 않는 나이이고 50세는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하고 60세는 이순,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나이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공부를 많이한 저자 역시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느 세대든 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책임지는 것은 어느 나이든 다 어렵다. 50이 되었어도 여전히 세상 이치를 모르겠고, 60이 된다고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것 같지 않다. 아니 더 고집스러워지겠지. 공자님도 자신의 희망을 말했는지 모른다.


저자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 속에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언급했다. 우리 동네 까페 사장님이 소개해 준 이 곡을 책에서 보다니 더 반갑더라.  또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전통음악이라고 소개한 것이 '정악'이라는 것까지 명확하게 짚어내는 저자에 대해 존경을 보낸다.


저자의 어머니가  은혜의 집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나왔다. 바로 우리 옆동네에 있는 천주교 요양시설이다. 또한 친밀하게 느껴진다.


'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사후가 허무할지라도 격렬한 순간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로마인의 나이]라는 한 챕터가 마음에 와닿았다. 사적인 친분 관계에서는 나이를 많게 하려고 하고, 취업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줄이려고 하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으면서 또한 나이와 지혜가 정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이지.

우리 말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명확해서 그게 사고의 유연함을 막는다. 나이든 직급이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반박을 한다든지 제안을 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데 그것도 언어의 문제가 아닐까? 

라틴어 계열의 언어에는 '파를리아모 델 투(이탈리아어), 두젠(독일어) 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을 놓자'라는 뜻이고, 한 두번의 만남 뒤에는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스페인어에도 tutear라고 말을 놓는다는 단어가 있다. 

이름을 부르느냐 직급을 부르느냐도 사고의 유연성과 관련이 많은 것 같다. 서양에서는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른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훨씬 부드럽게 진척되는 경험을 하게된다.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접속법'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문법이 있는지..... 이 책에서 이 의문이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을 하지 마라' 식의 직설법적 표현이 아니라 ' ~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가시기 바랍니다' 등의 완곡한 표현이 접속법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접속법을 사용하여 완곡한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아, 그랬었구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냥 일상이라서 이런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nfans 아기, 유아

parvulus 어린이, 만 7세, 초등학교 입학

puer/puella 소년 만 14세 /소녀 만 12세

adulescens 청소년 만 20세까지

invenis 젊은이 만 20세부터 만 45세까지

vir 성인 남성, 만 60세까지

senex 노인, 만60세 이상

재미있는 것은 유베니스다. ㅋㅋㅋ 20세부터 45세 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물론 군인으로 데려가려고 한 의도가 있었다지만 어쨌거나 40살인 조기 퇴직자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단어임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보면 부자들의 연회에는 '책 읽어주는 노예'가 있었단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패전한 적국의 포로일지, 유난히 영특한 노예의 아들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