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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스페인(2024)

[말라가] 욜란다와 엘꼬르떼 잉글레스

by 그랑헤라 2024. 4. 16.

2024년 2월 1일

* 주의 : 어설픈 스페인어로 경험한 이야기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말라가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어리둥절한 상태로 A라인 버스 정류장을 찾아다녔다.

구글 지도에 시내로 들어가는 A라인 버스가 11시에 있다고 떠서 택시는 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던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고, 늦은 시간이라 공항 안에 있는 상점이나 안내소는 이미 문을 닫았기 때문에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A라인 버스 노선표가 작게 붙어있는 정류장을 찾았으나 확신이 없었다. 그 곳에 있던 여자에게 물었다. 맞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멀리있는 버스를 가리켰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라고 했다.

그 여자는 내가 공항을 빠져나올 때부터 진지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고 무뚝뚝한 인상에 선뜻 다가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서로 말문이 트이자 대화는 계속이어졌다. 자신은 공항에 있는 카페에서 24년간 일했고, 가나사람인 전남자친구에게서 영어를 배웠고(영어로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능숙하게 영어로 대답했다), 좀전엔 엄마와 통화를 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나 또한 한국에 있는 우리집으로부터 24시간을 날아서 여기에 왔고, 한달동안 어학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울 거라는 것까지 풀어냈다. 낮 시간이었으면 밥이나 커피도 같이 먹을 수도 있었겠다.

욜란다, 대충 요런 느낌

욜란다(그녀 이름)는 어디에 묵느냐, 버스터미널 부근에는 인적이 드물어서 여자 혼자인 여행객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고마워, 괜찮아, 내 숙소는 센트리꼬야.”

정말 센트럴인줄 알았다.

욜란다를 포함해서 함께 버스를 탔던 5명은 중간에 모두 내리고 긴 2량 버스 안에는 나 혼자 달랑 앉아있었다. 모니터에는 버스노선도가 보여지는데 내가 예약한 호텔은 버스터미널 다음 정류장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좀 난감했다. 넓은 도로에는 달리는 차도 많지 않았고,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 건너편에 엘꼬르떼 잉글레스가 있었고 그 뒤편에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숙소가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걸까 겁이 났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어도 무서웠을텐데 욜란다의 말에 더 쫓기듯 걸었다. 그리고 골목을 돌아 돌아 호텔의 불빛이 보이자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오늘, 다시 엘꼬르떼 잉글레스에 갔다. 무서웠던 어제의 길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정말 딱 그 의도 뿐이었다. 엘꼬르떼 잉글레스가 1월에 대폭 할인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낮시간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나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고, 낡은 내 크로스백이 내려다 보였고, 나는 가방코너에 있었다.

나는 쇼핑엔 젬병이다. 남들 다 아는 명품도 전혀 모르고 좋은 물건을 보는 안목도 없다. 안목이 없으니 비싼 물건을 사고도 후회하는 일이 많고, 그러다보니 물건 사는 일이 점점 줄고....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더 물건을 사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디자인에 부담없는 가격의 가방을 하나 고르고 카운터로 갔다.

"너 여행자 카드 있어?"

"그게 뭐야?"

"여행자 카드 있으면 세금만큼 더 할인해 줘. 카드 만드는 거는 공짜인데 저~기에서 만들 수 있어. 지금 바로 하나 만들어 올 수 있어." 뭐...이런 느낌의 말이었다.

처음엔 과감하게 거절했다. 세금이 얼마나 된다고...

백화점 옆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다시 돌아갔고, 여행자 카드를 만들었고, 10% 환불을 받았다. 기분이 은근히 좋아져서 언니 가방을 하나 더 샀고, 여행 경비까지 쥐어준 올캐 가방을 하나 더 집어들었고, 동생 것을 보다가 아차 싶었다. 세금 만큼 혜택을 보려다가 몇 배의 쇼핑을 더 하게 되었다. ㅠ.ㅠ

결재할 때 그 유능한 점원이 말했다.

"다른 것 더 사면 2유로 더 할인 받을 수 있어."

엘꼬르떼 잉글레스가 1월만 할인하는 줄 알았는데, 날짜가 정해져 있었다.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