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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스페인(2024)

바로셀로나 공항에서

by 그랑헤라 2024. 4. 16.

2024년 1월 31일 

제 시간에 호출택시가 올 것인지(나는 도시 변두리에 산다) 걱정되어서, 사촌오빠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택시기사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잘 알지 못하는 나보다는 친구인 오빠가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촌 오빠가 직접 픽업을 해주겠단다. 그렇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집을 출발했다. 그 시간이 1월 30일 오전 5시 50분이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고 일을 한다.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도 일찍 도착했고, 인천공항에도 여유있게 도착했는데, 체크인하고, 짐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빠져나가기까지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남은 긴 시간을 탑승게이트에 앉아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그래도 기분이 괜찮았다.

 

예정되었던 비행 시간이라면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말라가행 비행기를 환승하는데 2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제 시간에만 도착한다면 환승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연착만 되지 않기를 바랬는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내가 탄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5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환승 걱정은 싹 날아갔다.

 

입국심사 대기줄이 길었지만 시간이 많으니 괜찮았다. 더구나 내가 탈 부엘링 항공사는 국제선과 같은 터미널1을 사용하고 있어서, 도착한 곳에서 1층만 올라가면 바로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스케줄 알림판에 뜬 체크인 카운터로 찾아갔더니 셀프체크인 카운터였다. 수많은 기계가 늘어서 있고 사람은 많지 않아서 빈자리도 꽤 있었다. 나는 이미 모바일 체크인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짐만 부치면 그만이었다. 주저없이 기계 앞으로 가서 시작 버튼을 클릭하고 여권을 스캔하니 내 표가 화면에 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 짐 부치는 과정부터가 망설여졌다.

‘이게 맞나?’

확신이 들지 않아서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저 쪽에 있는 415카운터로 가라”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 쪽으로 갔다. 400번대 카운터는 현장에서 체크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었고 이미 줄이 구불구불 늘어서 있었다.

‘인정머리 없는 년, 클릭 한 번이면 되는 일이었는데...’

 

인천 공항에서는 내가 셀프 체크인 기계 옆으로 가니까 옆에 있던 알바생이 눈깜짝할 사이에 수화물표 뽑고 캐리어 손잡이에 붙여주더만... 그것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지루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체크인 수속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당하던 기세가 조금 꺾었다. 미소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클릭 한 번만 확인해 주면 나는 이곳에 바르셀로나에 스페인에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을 텐데...

 

사실 기세는 입국 수속할 때 긴 줄에서 한 번 꺾이긴 했다. 인천공항에서는 대기줄 같은 것 없이 검지 한 번 터치하고 출국했는데, 이곳에서는 ‘기타 국가’에 속해서 긴 대기줄에 있는 것 자체가 믿지 못할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주는 간식 파니니가 얹혔나보다. 가끔씩 배가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 저녁 대신 자연산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