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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스페인(2015)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의 석 달 - 스페인어 공부

by 그랑헤라 2015. 12. 21.

2015년 10월 1일 - 12월 16일

 

난 초등교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카리스마 떨어지고, 맺고 끊음이 애매하고, 야물지 못한 나는 도시의 큰 학교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한 교실에 12명 내외의 시골의 작은 학교는 나에겐 딱 좋은 환경이었으나, 그 곳에는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한 점수를 받으러 오는 또래, 혹은 나 보다 젊은 교사들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내가 훨씬 더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의 입장도 훨씬 더 생각해 주고, 아이들과 훨씬 더 가깝게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연말의 교사 평가에서는 점수가 필요없는 교사이고, 그래서 부장이라는 직책을 갖지 않기 때문에 서열이 늘 뒤로 밀렸다. 난 그 현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노후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연금수급이 가능한 해, 바로 2015년 8월 31일자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27년 5개월의 내 인생을 바친 학교라는 곳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학교를 그만두기로 마음 먹고, 그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2년 정도는 남미 쪽으로 여행하기로 결정했고, 그 전에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야돌리드.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에 있는 도시로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관광객이 거의 없고, 정통의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이 곳을 선택했다. 인터넷을 통해 학교에 연락을 하고 정보를 구하고 서류를 보내면서 준비를 했고, 석 달 동안 운영되는 스페인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나는 기초 1단계 반이었다.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우리 반에는 남편의 근무 때문에 바야돌리드에서 살게 된 프랑스 아줌마(나보다 훨씬 어리고, 프랑스 이미지답게 멋지다) 엘렌, 대학 전공이 스페인어가 아니어서 스페인어의 기초도 모르고 베트남에서 온 칸(막 20살이 됨), 한 달 후에 들어온 이탈리아의 마리오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었다. 

이 네 명 사이에서도 수준차가 심해서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포르투갈어, 이탈리어아, 프랑스어는 스페인어와 비슷하다. 스페인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는 마리오는 첫 날부터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여 의사 소통이 가능했고, 학창시절에 라틴어를 배운 적이 있다는 엘렌은 기초 문법이나 간단한 생활 단어는 몰라서 질문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일반적인 이야기는 다 알아들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스페인어 문법을 한 강좌 들어서 기초는 안다고 생각한 나는 듣기가 전혀 되지 않았고, 문법 조차 공부하지 않은 칸은 나 보다 다 어렵게 적응해 나갔다.

 

 

 

오전에 대학 어학원에서 3시간 공부를 한 후에 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도서관이나 집 근처에 있는 학교 부속 건물인 라 레이나 소피아 도서관에서 서너 시간 더 공부를 했다. 고3 때에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었다. 

주로 학교에서 휘갈겨 쓴 공부 내용을 정리하면서 복습을 했고, 그림책을 사서 사전을 찾으며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 그림책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단어와 내용이라서 한 권을 읽어내는데 한 달은 족히 걸렸다. 

 

스페인어를 좀 더 효육적으로 배우기 위해 숙소는 홈스테이로 했고, 수사나와 알베르트 모자의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집은 좀 어려운 편이어서 아파트도 좁고, 깨끗하지도 않고, 어두컴컴했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는 살아본 적이 없고, 또한 오랫 동안 혼자 살았던 내가 잘 적응할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영어가 자유로운 알베르트는 학교를 마치고 오면 나와 잘 놀아주었고, 처음에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던 수사나와 나중엔 둘이 같이 다녀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친해졌다. 확실히 홈스테이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언어 습득에 빠른 길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홈스테이 비용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고,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아파트 하나를 나누어 사용하는 삐소라는 형태의 숙박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 처럼 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머물 사람은 그 숙소를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어학원 학생들은 짧게는 6개월, 보통은 1년을 공부하러 오는 전공자들이었다. 

 

 

 

다른 우리 나라 학생들의 모범이 될 만큼(내 생각 아니고, 보경이나 다영이가 해 준 말) 열심히 공부한 나는 3개월 후에 여행하기에 가능할 정도의 기본 의사 소통은 할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고, 수료증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스페인어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시간도 많으니 더 공부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류 절차가 귀찮아서 비자 없이 공부할 수 있는 3개월이 끝나서 더 이상 스페인, 아니 유럽연합국가에서는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무비자로 6개월을 머물 수 있고, 더 있고 싶으면 약간의 수수료만 내고 연장도 할 수 있고, 사설 어학원도 비교적 많은 멕시코를 염두에 두게 되었다.

 

 

 

2015년 12월 27일. 멕시코시티에 도착했고, 호텔에 머물면서 한인타운이 있는 소나로사 지역의 셀쿰이라는 작은 어학원에 6개월을 왕창 등록해버렸고(이젠 빼도 박도 못함.), 어학원에서 숙소를 알아봐 준다는 조건으로 6개월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는 내가 구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