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0일 일요일 - 16일 토요일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메트로버스를 타고, 발데라스에서 다시 메트로로 갈아 타고 옵세르바토리오에 있는 뽀니엔떼 버스터미널로 갔다. 아직 택시 요금 흥정을 하지 못해서 택시를 타는 것은 머뭇거리게 된다.
12시에 출발하는 비싼 직통버스를 탔더니, 좌석이 비행기 비지니스석 만큼 좋았다. 그런데 전망을 보려고 맨 앞자리를 달라고 했는데, 이런, 기사칸과 승객칸이 검은 벽으로 막혀져 있는 버스다. 더 답답한 상태로 졸면서 자며서 주변 구경하면서 그렇게 2시간 30분을 달려 바예데브라보에 도착했다.
마을을 들어서면서 부터 멕시코가 아닌 지중해의 시골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 모습이 딱 그랬다. 다른 멕시코 마을은 아직 가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것도 스페인의 영향이라면 영향이겠지.
마을도 전체적으로 여유롭고 한적해 보였다. 센트랄에 있는 시장을 중심으로는 엄청나게 북적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이다.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마을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중심가에 있는 골목은 꽤 고급스러운 공예품을 파는 상점이고, 더 깊숙이 들어가는 골목은 삶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조금은 낙후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집마다 꽃과 나무를 예쁘게 가꾸고 있는 곳이다.
마을의 전망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패러글라이딩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장비가 없는 나는 탠덤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가격이 1200-1500페소(8만원 내외?)라서 당연히 포기했다. 일주일 생활비를 탠덤비행에 써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비행 구경을 하다보니 척추 부상 이후로 접어둔 비행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솔솔 났다. 집에 가면 아무래도 비행을 다시 시작할 듯...
두번째 방법은 크루즈 거리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이다. 가파르긴 하지만 짧고 마을 가까이에 있어서 골목 골목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내가 올라간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날이어서 올라가는 길이 미끄러웠다. 작고 각진 돌을 깔아 만든 길은 내가 걷기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으나,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는 올라가는 자동차들에겐 고난의 길이었다. 좀 낡은 차들은 올라가다 멈추고, 다시 후진으로 내려와 힘껏 올라가다가 다시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부잣집들은 다 언덕 꼭대기에서 높은 담장을 쳐 놓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번째 방법은 라페냐에 올라가서 보는 것이다. 라페냐라는 말 그대로 울퉁불퉁한 바위산에 올라가는 것인데, 주변에 비해서는 높으나 산 많은 동네 사람인 우리가 생각하기엔 나즈막한 곳으로 좁을 등산로도 잘 닦여 있었다. 거기에서 보는 풍경은 멀리 봐도, 내려봐도, 올려봐도 다 멋지다.
내가 바예데브라보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패러글라이딩 월드챔피언쉽 슈퍼파이널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경기에 참가하는 문섭이를 위해 소나로사의 한국식품점에서 김치, 제육볶음 양념한 것, 된장, 고추장, 가래떡, 라면, 고추가루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압력밥솥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갔다.
12일 화요일. 오프닝세러모니가 있는 날이었다. 멕시코 국기와 국가에 대한 긴 의식이 끝나고 멕시코의 전통 춤과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는 좀 긴 축하행사였다. 쪼끔만 짧았으면 아주 좋았을 것을....
내가 그리 애국자는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태극기를 보면 왠지 뿌듯하다. 더구나 저 국기는 문섭이와 하치경이 선수로 출전했기에 있는 국기.
개점 직후 휴업이라더니... 시합 첫 날부터,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이 마을에 와서 알게 된 마리포사 모나르카 (나비보호구역 정도로 번역?)를 꼭 가고 싶었으나, 패러하기 좋은 날이 나비도 날기 좋은 날이라, 나 역시 패러 선수들 처럼 할 일이 없었다.
16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나비의 비상을 보러 가기에 적당한 날이 아니었다. 잔머리를 써서, 하루 더 남은 숙소의 예약은 다음 주로 미루어 놓고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다.
1월 22일 금요일
일기예보가 아주 좋다. 금, 토요일 다 좋다. 패러에도 나비의 비상에도 이 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듯 싶었다. 어학원에서 패러 대회를 체크해 보니 전체 타스크 120 km에 골이 호숫가 착륙장이다.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수업을 반만 듣고 터미널로 가서 바예데브라보 행 버스를 탔다.
숙소에 짐을 놓고, 택시를 타고 착륙장에 갔다. 조금 기다리니 수많은 글라이더들이 골로 몰려오고 있었다.
'가만, 난 문섭이와 하치경이 몇 번인지도 모르잖아?'
사진을 찍으면서 아무리 살펴봐도 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하치경은 거의 마지막 골에 들어온 선수가 되었고, 문섭이는 중간에 착륙했다.
토요일, 시합 마지막 날도 날이 너무 좋아서 많은 선수들이 골에 들어왔고, 난 사진을 찍어대며 신나는 구경을 했다. 아직 젊은 문섭이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이겨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또다시 중간에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ㅜ.ㅜ
<우리 나라의 하치경 선수의 착륙>
마리포사 모나르카
23일, 토요일. 눈을 뜨자마자 문을 열고 하늘부터 보았다. 아싸~, 구름 한 점 없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는 것이 나비의 비상에도 최고의 날이겠다. 간단히 씻고, 짐은 숙소에 맡겨놓고, 가장 간단한 차림으로 버스 터미널로 갔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일주일 전에 헛걸음을 하고 왔을 때의 그 분위기... 나 혼자만 올라가면 무서울텐데, 사람이 젤 무섭다는데, 아무도 없으면 말을 타고 올라가야지, 마부는 믿을 수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을 하면서 갔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 내린 사람도 둘이 더 있었을 뿐더러 관광버스 대여섯대와 자가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이미 산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비의 서식지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올라가도 한 시간 정도면 올라가는 곳에 있었다.
그 곳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한 두 마리 보이기 시작하던 나비들이 어느 순간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날고 있었다. 물론 목숨을 다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도 수없이 많았다. 장관이었다. 말로는 표현 못한 만큼. 나비의 날개짓 소리가 시끄럽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으면 누구라도 멋진 작품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등산길을 말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50 페소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잠시 갈등했지만, 나의 편안함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말을 탈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내 옆을 지나면서 씩씩거리는 말과 마부의 거친 호흡을 들으니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사람들에겐 이것이 밥벌이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글프기도 했다. 더구나 돈을 낸 어른 손님은 말을 타고 가고, 12살이나 되었을까 생각되는 마부 아이는 그 옆을 뛰다시피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개선점을 찾아야 해.
'여행 이야기 > 멕시코(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관 보다 멋진 공연장을 가진 예술 궁전 in 멕시코시티 (0) | 2016.02.07 |
---|---|
한류를 실감하는 공간, 한국문화원 in 멕시코시티 (0) | 2016.02.05 |
멕시코의 도서관들, 바스콘셀로 도서관, 멕시코 도서관 (0) | 2016.01.31 |
하나의 주도라 말하기엔 웬지 부족한 똘루까 (0) | 2016.01.15 |
멕시코시티에 관한 몇 가지 오해 (0) | 201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