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2일 일요일 날씨 - 흐리고 선선함
새벽. 자미(모스크)에서 들리는 아잔(기도시간을 알리는 신호) 소리에 어렴풋이 잠을 깼으나, 곧 다시 잠들었다.
아마시아의 새벽 기차는 내게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나보다. 진실로 원했다면 시간을 확인하고 기차역으로 달려갔을 것이지만, 난 열어 놓은 창문을 닫고 다시 홑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 기차를 보냈으니 오후 기차를 탈까? 삼순까지 버스를 타볼까? 그냥 하루 더 있다가 밤차를 탈까?' 자리에 누워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7시 20분. 짐을 정리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삼순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8시 그리고 9시 10분 이란다. 갑자기 8시 버스를 타고 싶어졌다. 급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면서 택시를 불러달라니까 듀락(돌무쉬)를 타고 가란다.
"50m만 가면 오토가르로 가는 듀락을 탈 수 있어."
"알아. 그치만 난 시간이 없어. 삼순 가는 버스는 8시에 있어."
"괜찮아. 9시 10분에도 있어." 그러고는 택시를 불러주지 않았다. 이 상황이 화를 내야 하는지, 고마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난 1.2리라를 하는 듀락을 타고 오토가르로 갔다. 그리고 8시가 넘어서 출발하는 메트로회사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 좌석과 유리창 사이에 주황색 작은 쿠션들이 끼워져 있었다. 뭔가 했더니.....잠 잘때 머리를 받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것인데도 센스가 느껴졌다. 또한 버스가 도시의 끝자락을 빠져 나가려고 작은 화단을 따라서 도는데 가운데에 놓인 도시의 상징물이 눈이 들어왔다. 이 도시는 사과가 유명한가보다. 우리 나라 곳곳에 있는 홍보 상징물과 비교해서 참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보였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차는 높지 않게 연결된 산과 구릉지를 따라 작은 마을의 오토가르를 모두 들러서 삼순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바닷가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토가르에서는 바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삼순이 마음에 들면 하루 묵거나, 낮에 구경을 하고 야간 버스를 타고 트라브존으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마침 오르두를 간다는 버스가 있어서 옮겨탔다. 오르두는 트라브존으로 가는 흑해연안 도로에 점으로 찍혀 있는 지도에서만 본 곳이었는데.....그것도 아침 나절에......... 그냥 느낌이 좋아서 가보기로 했다. 오르두가 마음에 들면 하루 묵고, 그렇지 않으면 트라브존까지 가기로 했다.
흑해를 따라 달리는 풍경은 완전 그림이었다. 흑해는 하늘빛에 따라 물 빛깔이 시시때때로 변하는데....하긴...모든 바다가 그렇기는 하지.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바다가 유난히 검게 보이기는 하지만.....나중에 알았는데, 흑해라는 이름은 눈에 보이는 바다 때문이 아니란다. 흑해의 표면은 소금물이고 깊은 곳은 민물이라서 그 민물 때문에 깊은 곳만 검다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네이버언니로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오르두.
바닷가에 자리잡은 예쁜 도시 모습에 혹하여 갑자기 하루 묵기로 결정한 오르두는 우리의 읍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적어도 내가 숙소를 정하고, 중심가를 돌아보고, 메르지멕 초르바로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아주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정보고 뭐고 이름도 처음 듣는 작은 동네에서는 정말이지 딱 30분만에 할 일이 없어졌다
"나는 인포메이션에서 관광 안내를 하는데, 한 번 들려. 사무실은 바로 저 쪽이야."
호텔로 들어가기 전에 만났던 인포아저씨가 생각나서 가보았다. 엄청 반가워했다. 그리고 자세히도 설명을 해 주었다. 하긴....내가 있는 동안에 동양인은 딸랑 나 하나였고 또한 관광객이 드문 동네이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아저씨의 설명대로 돌무쉬를 타고 오르두의 전망을 볼 수 있는 보즈테페(나무 없는 언덕)로 갔다. 물론 중간에 박물관에 들리는 정성을 보이기는 했는데....박물관은 허술했다.
터키에서는 돌무쉬가 참으로 인상적인데, 보즈테페로 올라가는 돌무쉬가 그 중 압권이었다. 정류장에서 사람이 꽤 많이 탔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후진을 해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유는 바로 알게 되었다. 한 아주머니가 몸이 많이 아파 보였고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돌무쉬에 올라서 자리에 비스듬히 눕자, 돌무쉬가 출발했다. 가파른 언덕을 꼬불거리며 한참을 올라가서 그 가족이 내려주고 출발을 하나 했더니,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그 가족을 다시 태우고는 환자의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되돌아 나왔다. 이게 돌무쉬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차를 타고 있던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돌무쉬에서 내리기도 전에 오르두의 전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준비하는 사람들....반가워라. 바로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교관인 듯한 사람은 컴페티션 파일럿(장거리비행 선수)을 꿈꾸는 사람으로 참 유쾌하고 순수한 사람인 것 같았다. 파일럿들이 준비를 하고 이륙을 하는 동안에 우리 둘은 짧은 영어로 패러글라이딩 월드컵과 10월에 데니즐리에서 있는 월드컵 파이널리그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글라이더 빌려줄께. 타봐."
"안돼. 나 보험 들지 않고 왔어." 보험회사가 영업을 끝낸 늦은 시간에 도착한 인천 공항에서는 여행자 보험을 들 수 없었고 난 이번 여행은 보험없이 다녔었다. 또한 한 동안 비행을 쉬었기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해서 사양했다.
보즈테페에서 보는 전망은 말로는 표현하기가 불가능했다. 음료수 하나를 놓고, 내 넋도 내려 놓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 돌무쉬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그 파일럿들이 다시 올라왔다. 장비 펴는 것을 도와주고 사진도 찍어 주고 그들의 차를 타고 함께 메이단(중심)으로 내려왔다. 하루가 완전한 대박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걸었고,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나도 가보았다. 라마단 기간이라서 저녁에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이나 크고 작은 행사가 있는데 이 곳 오르두는 더 유난스럽게 생각되었다.
중심지에 있는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사를 하고 있는데 도저히 보이지가 않았다. 빵과 물을 나누어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 틈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는 시큰둥해져서 저녁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없었다. 모든 음식점에는 사람들로 가득차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낮에 보았던 통닭구이를 하는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그 곳은 한산했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하니 바로 누군가가 따라와서 심각한 얼굴로 인사를 하며 앉았다.
"난 경찰이다. 니가 아까 광장에서 사진을 세 장 찍었는데 확인해야겠다."
"무슨 일이냐?"
"넌 경찰을 찍었다. 그건 문제가 된다. 확인하자"
"그게 무슨 문제냐? "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는 'POLICE'라고 프린트 된 파란 유니폼을 입고 두 줄로 서 있던 경찰들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 있었다. 어지럽게 보이는 군중 속에서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제법 재미있는 사진인데 지우라고 했다.
"너, 경찰 면허증을 먼저 보여줘라."
"알았다." 좀 당황하는 것 같더니 지갑을 열심히 찾는데.....없었다.
'오호....요것 봐라..면허증이 없네?' 그러면서도 딱딱한 인상에 기가 죽어서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진을 삭제했더니 여행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갔다. 난 그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했다.
"아니다. 내가 니네 문화를 잘 몰라서 미안했다." 그런데 그 뒤로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나를 지켜보는 눈길이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예전에 써놓았던 것을 발견하고 옮겨놓았다-------
'여행 이야기 > 터키(2010,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해에서 빈둥빈둥] 카으룬 없는 아이델은 앙꼬없는 찐빵 (0) | 2018.03.15 |
---|---|
[흑해에서 빈둥빈둥] 아이델 가는 길 (0) | 2018.03.15 |
[흑해에서 빈둥빈둥] 모두들 강추하던 아마시아 (0) | 2018.03.15 |
이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기 바라며, 사프란볼루 (0) | 2015.12.25 |
Again 이스탄불 3 (0) | 2015.12.23 |